물 흐르는대로

by 황미옥

나를 돌아봤다. 10대부터 30대까지 물 흐르는대로 내 삶은 흘러갔을까. 청소년기 시절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빈자리를 많이 느꼈다. 나 혼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꿈이길 바랬다. 내 옆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나는 자주 울었다. 옷도 검정색만 주로 입었다. 엄마대신 친구를 챙겼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이 오직 내 편으로 느껴졌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911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했다. 필기시험 공부도 하고, 자격증 취득도 하면서 내가 선택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거의 삼 년쯤 공부했을 때 나는 순경 채용시험에 합격했다. 수년에 걸쳐서 원하는 일을 노력해서 얻은 첫 경험이었다.


이십대는 오직 일에 투자했다. 사람들과 술자리가 좋아서 퇴근한 이후에는 자주 어울렸다. 체력이 좋은 이십대였기에 가능했다. 이십대 중반에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어서 남편과 둘다 사무실 일로 바쁘게 지냈다. 집에서 같이 보내는 시간보다 일터에서 늦게까지 일했다.


서른 초반, 나는 마음먹고 인공수정 시술을 위해 몸관리를 했다. 3개월 동안 남편과 운동도 하고, 금주했다. 다행히 한 번만에 예빈이를 임신했다. 4년 뒤에 인공수정 시술을 한 번 더 했다. 똑같이 몸을 챙겼다. 예설이를 임신했다. 삼십대 중반에 출산한 예설이와 예빈이를 같이 양육하면서 임신하면서 찐 살도 빼고, 바디프로필 촬영도 했다. 일도 하면서 책도 읽고, 글도 썼다.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춰 가기 위해 노력했다.


서른 후반, 예설이가 백혈병 진단받았다. 우리 가족은 모든 것이 예설이 위주로 돌아갔다. 예빈이가 초등학교 간지 얼마안되었을 때인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음주면 예설이가 항암치료 시작한지 2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내 삶은 물 흐르는듯이 흘러갔는가.


어깨에 힘빼고 사는 것이 물 흐르는대로 사는 것일까?

물 흐르는대로 사는 것이 마음가는대로 사는 것일까?


강박이 있었다. 어떤 목표를 세우면 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거듭 생각했고, 집착했다. 예설이가 아플 때는 일부러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내가 강박적으로 변할까봐 두려웠다.


유연함. 물 흐르는대로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길로 가다가도 저길로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이 나에겐 필요하다. 하루에 너무 많은 것을 하지말기로 했다. 내 시간에 빈틈을 주고 싶다. 아직 잘 안 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노력중이다. 점점 좋아질꺼라 믿는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하늘도 올려다보는 여유를 부린다. 그 시간이 오직 나혼자서 보내는 시간이다. 매일 기다려진다. 하루를 여유 있게 시작하니, 이어지는 나의 하루도 여유 있게 느껴졌다. 내 마음도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나를 자꾸 어딘가에 가두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차분하게 천천히 내 속도에 맞게 뚜벅뚜벅 걸어가보자. 물 흐르는대로 리듬에 맞겨보자.

매거진의 이전글고양이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