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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나북스

명랑한 유언

by 황미옥

《명랑한 유언》을 다 읽었다. 마음에 꽂히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밑줄도 가득이다. 그런데 책을 덮기 직전, 천선란 소설가가 쓴 문장이 가슴을 멈칫하게 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떠나는 것과 남겨지는 것이 동시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정말 나를 향한 ‘명랑한 예언’ 같다.


떠나는 것도 쉽지 않고, 남겨지는 것도 쉽지 않다. 떠나는 이의 말은 단단하지만, 남겨진 이의 말은 물에 퍼진 조개처럼 흐물흐물하다. 모든 페이지가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떠난 이의 말로 시작해, 남겨진 이의 손으로 끝나는 책. 그리고 나는, 늘 남겨진 이 쪽에 서 있었다.


엄마를 떠나보냈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떠나보냈다. 살아가다 보면 더 많은 이별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떠나기 전에 햄릿처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까? 아직 잘 모르겠다.


단 하나 확실한 건 있다. 나는 혼자이고 싶지 않다.

이 여정을 함께 걸어줄 사람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지내는 이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하루일 수도 있으니까. 그 사실이 벅차게 밀려온다.


오효정 씨를 보며 느꼈다. 이분은 늘 뛰는 사람이었다. 삶을 질주하는 사람. 그래서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20대와 30대의 나도 늘 뛰고 있었으니까. 10대에 흔들리던 나를 만회하려고 더 열심히, 더 앞서가려고 뛰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런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준 건 예설이의 백혈병이었다. 달리던 나를 멈추게 한 커다란 신호. 지금도 가끔 브레이크가 풀려 다시 뛰려 하지만, 여러 가지 장치들이 나를 잡아준다. ‘느껴라, 누려라, 천천히 살아라’ 하고 조용히 신호를 보내주는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 신호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해 준 백혈병환우회 모임이 너무 고맙다. 나에게 필요한 때, 꼭 필요한 책을 건네준 사람들.


언젠가 내가 이 지구별을 떠날 때가 오면, 좋았던 날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으면서 가고 싶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명랑한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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