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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나북스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

by 황미옥

책을 읽었다기보다, 오늘의 나를 확인한 하루


오늘 독서모임은 책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책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누가 더 깊이 읽었는지,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같은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각자가 어떤 상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나는 오늘 울트라 러닝이라는 말에 꽂혀 있다.

어떻게 배우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어떻게 말로 설명하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들.

아마도 그것은 더 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식을 찾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채희 선배는 내면 소통, 명상, ‘지금-여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제목 하나, 문장 하나가 지금의 삶에 닿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씩 늘려가는 일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가 모여 앉아 있던 이 시간도

나중에는 하나의 공간으로 기억될 거라고 했다.


진경 언니는 책 속 문장을 티슈에 적어왔다.

분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였다.

복직과 시험관 일정이 겹치면서

불안과 걱정이 겹겹이 쌓여 있는 상태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언니는 말했다.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섭지만 나아가는 거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알았다.

어떤 시기의 독서는 성장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과 회복의 언어가 된다는 것을.

쉬운 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의 마음을 밀어내지 않는 문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책을 하루 만에 읽었다.

짧은 문장과 그림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특히 이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무엇도 되려고 하지 않아야 내가 될 수 있다.”


나는 늘 무언가가 되려고 애써왔다.

전문가, 역할, 성취, 결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고 할 때

오히려 내가 선명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오늘 모임에서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름답다라는 말과 나답다라는 말의 어원이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나다움은 완성형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쌓이는 기억의 모양일지도 모른다고.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선택에 가깝다고.


그래서 이 독서모임이 좋다.

이 모임은 잘 읽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완독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각자가 읽은 만큼,

말할 수 있는 만큼만 꺼내놓는다.

정답을 내기보다

지금의 마음을 확인한다.


오늘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모인 게 아니었다.

각자의 삶이 버거운 상태에서

책을 사이에 두고 앉아

지금의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서로에게 조용히 건네고 있었다.


아마도 이게 내가 이 모임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독서모임이기 이전에,

삶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무엇도되지않아야내가된다

#나다움은과정이다

#회복의독서

#기억이남는공간

#완독보다대화

#독서모임은사람이다

#삶을살리는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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