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것은 때가 있다, 협상가의 하루

by 황미옥

오늘 집에 손님이 오셨다. 김옥경 코치님은 나보다 스무 살이 많으시다. 처음 만난 건 KAC 코칭 자격증을 준비하며 실습 파트너로 만났을 때였다. 정말 스쳐가는 인연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10년 넘게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예설이가 양부대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으며 첫 한 달을 입원했을 때, 병원 생활이 너무 답답해서 갑자기 예전에 자주 먹던 음식이 간절히 먹고 싶어졌다. 속이 답답해서였을까. 코치님께 전화를 드리며 “낙곱새가 너무 먹고 싶다”고 했더니, 포장해서 병원까지 직접 와주셨다. 예설이를 출산했을 때도 유기농 음식만 챙겨서 집으로 들고 오시던 분이다. 오늘도 코치님은 피부샵에서 운영하시는 제품과 함께 딸기와 토마토를 한가득 들고 오셨다.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꺼냈다.

“코치님, 제가 최근에 깨달은 게 있어요. 지난 3년 동안 협상 공부를 하긴 했는데, 직접적으로 연습한 것보다는 간접적으로 한 것 같아요. 말하기 훈련이나 적극적 청취를 몸으로 익히기보다는, 강의 듣고 정리하고 복습하는 데 더 집중했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코치님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럼 이제 실천할 때가 된 거에요. 아무것도 모르면 실천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요. 코치님은 이미 이론을 충분히 쌓았고, 이제 움직일 타이밍을 스스로 느낀 거지요.”

그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가서, 무심코 《모든 것은 때가 있다》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마치 오늘의 대화가 그 제목과 꼭 닮아 있었다.

코치님이 돌아가실 즈음, 식탁 위에는 책 몇 권과 프린트한 자료, 노트들이 잔뜩 펼쳐져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자료를 꺼내 다시 설명하고, 또 이어서 이야기하는 우리의 모습이 순간 웃음이 났다. 참 우리답다 싶었다.

협상가로서, 나는 오늘 어떤 하루를 살았을까 돌아본다.

어제 서울에 다녀와 피곤했지만, 아침 5시 40분에 눈이 떠졌다. 늘 하듯 흰 종이를 꺼내 15분 타이머를 맞추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두고,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그대로 종이에 쏟아냈다. 박문호 박사님이 추천한 ‘효과적으로 생각하는 법’ 영상에서 배운 다이어그램 훈련이다. 지식을 쌓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지식을 편집하는 일을 연습 중이다. 오늘이 이 훈련을 시작한 지 16일째다. 매일 백지 위에 내 생각을 풀어놓으며 하루를 정돈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이어서 게리 네스너의 <Stalling for Time>을 읽었다. 하루 두 서장씩, 검색도 병행하다 보니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벌써 원서 읽기를 시작한 지 27일째다.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10분 정도는 영어 말하기나 글쓰기 연습을 한다. 내가 쓴 문장을 다듬으며 표현을 배우는 이 과정도 요즘 나에게는 소중한 훈련이다. 이렇게 하루의 준비를 마치고 나면, 씻고 아침을 차리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어 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 아침으로 누룽지를 챙겨두고, 어제 수도권 현장학습 모임에서 받은 자료를 노트북에 저장하고, 프린트하며 정리한 뒤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걸어가면서는 준혁 선배님이 단톡방에 올려주신 영상 〈I Tried FBI Hostage Negotiation〉을 귀로만 들었다. 약 25분을 걸으며 거의 끝까지 들었는데, 정말 흥미로웠다. 협상가가 아닌 일반인이 하루 동안 협상 훈련을 체험하는 내용이었는데,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오후에는 그 영상을 다시 보며 마인드맵으로 정리했다. 30분짜리 영상을 여러 번 되돌려 보며 필기하다 보니 1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내일은 실제 대화 연습 장면을 따라 하며 내 입으로 말해볼 생각이다.

협상 차량 안에서 다양한 도구와 팀이 함께 움직이는 장면을 보며, 체계와 시스템이 갖춰진 환경에서의 협상이 참 부러웠다. 동시에,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모습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적극적 청취와 말하기 기술을 더 체계적으로 훈련해야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문득 가수 박진영 씨가 떠올랐다. 예전에 그의 하루를 담은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아침마다 발성 연습과 피아노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내가 걸어갈 협상가의 길을 자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연습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낮에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고 출동 현장에서 변사체를 마주했는데,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남편의 복잡하고 슬픈 마음이 전해졌다. 나는 그저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함께 느꼈다.

협상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상대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지금보다 적었을지도 모른다. 협상을 배우며 내 삶도 함께 단단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늘, 김옥경 코치님께 제안했다.

〈협상가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각자의 하루를 글로 담아 함께 써보자고. 나는 협상가의 하루를, 코치님은 피부관리사의 하루를. 나는 함께하는 일을 참 좋아한다. 뭐든 같이 하면 멀리 가니까.

오늘 본 Michelle Khare의 영상과 필기한 자료도 함께 정리해 둔다. 혹시 협상가의 삶을 꿈꾸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이 작은 기록이 참고가 되면 좋겠다. 나 역시 선배 협상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으니까.

신난다.

내가 가는 길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될 거라 믿는다.

어제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조금 더 체계적인 오늘이라서 더 좋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오늘부터 〈협상가의 하루〉를 블로그에 매일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이 그 첫 번째 기록이다.

협상에 관심 있는 누구라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답게, 꾸준히 써 내려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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