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인출연습에서 음식수행까지

by 황미옥

나는 요즘 내가 떠올리는 생각들을 빠짐없이 수첩에 적고 있다. 도대체 하루 동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그 생각들 중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내려놓게 되는지도 궁금해서다.


오늘 아침에는 3일 전부터 Stalling for Time에서 발췌한 인출 문장을 외우며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향해 문득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마침 준혁 선배님과 톡을 하다, 오늘 아침 섀도잉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인출 연습 중이라며 그 사진을 보내드렸다.


곧 답장이 왔다.

“잘 외워지지 않을 때는 정명한 다음에 감정을 매칭하고 단어를 인출해봐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이해되지 않아 수첩에 적어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정명하라… 감정을 매칭하라… 어떻게?’


곱씹다 보니 정명이란, 지금 내 상태를 정확한 언어로 붙이는 일이고, 감정을 매칭하려면, 먼저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돌아보니 내가 쓰는 감정 단어는 늘 비슷하고 제한적이었다.


준혁 선배님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나는 인출 도구로 무드 미터를 사용해요.”


오래전에 한글 버전으로 만들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무드 미터를 떠올리니, 감정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Stalling for Time 인출 연습을 할 때도 감정을 함께 말해보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과 감정을 함께 꺼내는 연습 말이다.


그렇게 생각은 자연스럽게 개방형 질문으로 이어졌다.

위기협상에서는 개방형 질문을 ‘무엇–왜–어떻게’의 구조로 사용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 대화 중에 이 구조를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특히 ‘왜’라는 질문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다 롱블랙에서 읽은 한 기사가 떠올랐다.

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스님의 이야기였다. 올해 일흔, 47년째 요리하는 수행자의 삶을 살고 계신 분. 손님에게 따뜻한 황차를 내어주는 장면을 읽으며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스님은 음식에서 길을 찾으셨다고 했다. 먹는 음식이 사람의 성품을 만든다는 깨달음 이후, 사찰음식을 제대로 공부하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음식만 제대로 먹어도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불경과 경전을 찾아 사찰음식의 자취를 따라가셨고, 음식 손질법부터 주방 관리까지 모두 배웠다고 했다. 경전에 그렇게 자세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993년, 국내 최초로 사찰음식을 정리한 논문인 「사찰음식문화연구」를 펴내셨다고 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궁중음식 연구의 대가였던 고 황혜성 교수님도 선재스님을 찾아오셨다고 한다.


청소년들을 지도하며 끼니를 직접 챙기고, 논문을 쓰다 보니 하루 수면 시간이 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몸을 혹사한 끝에 간경화 진단을 받고,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때 스님은 결심하셨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사찰음식의 실험 대상으로 삼아보겠다고.


가공식품을 끊고,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그고, 제철 음식을 만들어 드셨다. 불교는 음식이며, 음식은 곧 약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렇게 스님은 ‘음식 수행자’가 되셨다.


“내가 먹는 한 가지가 내 마음을 만듭니다.”


르 꼬르동 블루와 에꼴 페랑에서도 강연을 하시며, 음식 절제의 마음이 곧 법을 구하는 마음이라고 전하셨다고 한다.

<열반경>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고 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어떤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먹고 있는지를 묻는 말.

스님이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삽니까》라는 책을 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 책을 바로 구매했다.


흑백요리사 시즌2 3화에 선재스님이 출연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꼭 한 번 보고 싶다. 안성재 셰프가 스님의 음식을 “HUMBLE, 소박함이 정곡을 찌르는 맛”이라고 표현했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스님은 실패를 많이 할수록 울림이 커진다고 하셨다. 한 가지를 열 번 이상 반복해야 내 것이 된다고. 동치미 하나를 제대로 만들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 가지찜을 만들 때 가지를 미리 간장에 절이면 아린 맛이 사라진다는 깨달음도 결국 시간과 반복의 결과였다.


식재료 역시 먹을 궁리를 하면 버릴 게 없다고 하셨다. 오래된 무도 말려 양념해 구워 드신다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결국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정엄마를 혈액암으로 떠나보냈고, 둘째 딸 예설이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마쳤다. 결혼 17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어머님께 반찬을 얻어 먹는다. 어제도 호박죽과 물김치, 콩반찬, 메추리알 반찬을 챙겨주셨다.


선재스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부터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hink & Grow Rich》에서 말했듯, 결단이란 먼저 스스로 그렇게 살겠다고 결정하는 일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협상가로서 이 길을 걷고 훈련하는 동안, 잘 먹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나도 잘 먹고, 우리 가족도 건강하게 챙기고 싶다. 연세 드신 어머님과 아버지께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제는 정말, 철이 들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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