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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미술관-<조선민화전>

옛 선조들의 소망을 담은 민화 전시회

by 민경우

'조선시대 때 이모티콘이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물론 조선시대 때는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소셜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아서 이모티콘은 있을 수 없겠지만, 이번에 다녀온 개인전에서 동물, 꽃 그리고 각종 사물들의 작품들을 봤을 때 어떠한 캐릭터들이 나왔을지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조선 후기 때 유행했던 민화를 감상하고 왔는데요. 현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창립 80주년을 기념하여 세 번째 고미술 기획전 <조선 민화전>이 열렸습니다. 3월 27일부터 오는 6월 29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근대기에 그려진 민화들도 함께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민화의 탄생배경은 조선시대 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신분제의 동요로 인하여 탄생했습니다. 18세기에 농업기술과 상품 유통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평민들의 성장과 부유한 상인계층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생성이 되었어요. 상류층들만 위한 회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민화가 속화(俗畵), 잡화(雜畵)등으로 불리었지만, 그림을 낮춰보는 '신분적 편견'이 깔려있어서 20세기 초 현대에 와서 '민화'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APMA 고미술 기획전. <조선민화전> 포스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이번 전시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작품부터 개성적인 작품들까지 폭넓게 소개하여 민화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기획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총 7개의 전시실이 나뉘어 있지만 직접 다녀와본 결과, 5개의 전시실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총 10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민화뿐만 아니라, 궁중회화와 도자기, 공예품 등 그 당시 민화에 영향을 받아 유행하던 작품들도 함께 볼 수 있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조선, 병풍의 나라> 기획전을 관람한 적 있었어요. 미술관 자체가 굉장히 크고 천고가 높아 작품을 감상할 때 집중도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었죠. 이번 전시에서도 그때와 비슷한 바이브를 느꼈고, '고미술 기획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미술관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1 전시실에서는 '책가도'와 '책거리' 병풍으로 책을 사랑하는 선조들의 마음을 담은 작품들로 시작할게요. 전쟁직후, 집권층이 혼란을 바로 잡고자 유교적 덕목을 강조한 작품인 '문자도'와 어락도, 어해도 등 어떻게 도식화가 되어 자유로운 화풍을 구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섹션이었습니다. 책가도나 문자도 등등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제가 느낀 바로는 대대손손 후손들의 번창을 바라는 건 물론이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성격이 유독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APMA 고미술 기획전. <조선민화전> 1전시실 전경,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1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된 작품은 바로 <책거리 8폭 병풍>입니다. 8폭의 화면에 서가 없이 책과 기물을 묘사한 책가문방도가 그려져 있죠. 책거리 그림은 18세기 후반 정조시대부터 유행하였다고 전합니다. 책거리 그림은 궁중회화에서 시작하여 민간화가 되어 오로지 문방사우만 장식되었어요. 이 작품을 보면서 옛 선조들이 얼마나 글을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언제부터인지 예전보다 저의 독서량이 많이 줄었는데, 꼭 저에게 다시 책을 읽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죠. 흔한 말들 중에 '나의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죠. 이 작품을 통해 리마인드 되었어요. 여기에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제일 먼저 소개해보았습니다.


작품은 각종 도자와 문방구, 불로불사를 의미하는 영지,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 다복을 나타내는 불수감으로 여백을 채워 구성하였어요. 후기작품임에도 필선이 깔끔하고 채색이 선명하며 세밀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작은 병풍이라는 점도 독특한데, 이러한 키 낮은 병풍은 머릿병풍이라 하여 잘 때 머리맡에 둘러쳤던 것입니다. 작품들 통해 머릿병풍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상의 매 순간에 글을 숭상하면서도 길상을 염원했던 조선 말기의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병풍 장황의 원형이 잘 남아있어 사료적 가치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전해집니다.


<책거리8폭병풍>,82.2cm x 292cm, 비단에 채색, 19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불로불사'를 상징하는 영지와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다음으로 <책가도 8 풍병풍>입니다. 일반적인 병풍과는 다른 형식으로 그려져 있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병풍도안이 꼭 양쪽으로 미닫이 문을 열어 그 내부에 있는 책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게 고안한 작품입니다. 1폭과 8폭에 분합문을 그리려 한 것처럼 표현했죠. 분합문은 대개 전통 한옥의 방과 대청 사이에 설치하는데, 앞으로 밀거나 당겨 여닫는 여러 짝의 여닫이문을 말합니다. 문을 개방하면 공간들을 연결하는 효과가 생깁니다. 팔각형의 문 안에 펼쳐진 책가는 6칸으로 완벽한 대칭을 볼 수 있습니다. 중앙에 산수화가 그려진 기준으로 좌우로 책과 기물이 묘사되어 있죠.


이 작품은 화면 가운데를 기점으로 서양의 투시도법을 정확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요. 이로 인해 깊이감 있는 공감을 확보했으며, 그 위에 음영법을 활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했습니다. 수입품, 희귀품, 사치품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물건들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입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을 만들어내죠. 화면 전반에 선명하면서도 누르스름한 계열의 안료를 많이 사용하여 차분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딱 봤을 때, 민화의 자유로운 개성을 잘 살리면서도 짜임새가 훌륭하고 정교하며 세련된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되어 적어보았습니다.


<책가도8폭병풍>, 184cm x 380cm, 비단에 채색,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이번에는 100여 명의 남자아이가 등장하는 작품인데요.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백동자도와 길상적 의미의 문자를 결합시킨 독특한 형식의 문자도 병풍입니다. 작품 속 아이들은 장군놀이, 행차 놀이 등 다양한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중국복장은 한 아이들을 보고 짐작 가는 것은 현실이 아닌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1폭에서 8폭까지 복잡하게 굽은 나무의 줄기는 각각의 문자 초서체의 획을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두 나무의 색이 다른 점을 보면 문자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이 작품은 정교하게 계획된 도안으로 제작되었고, 화려하고 정밀한 채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태평, 대길, 령 등 문자를 그리고 꼼꼼한 제작 방식을 보면 궁중회화와 민화의 관계를 반영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옛 선조들이 많은 자손을 낳고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의미가 보이면서도 저의 동심 가득하고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라 작품을 보면서 미소를 저절로 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백동문자도8폭병풍>, 129.5cm x 372cm, 종이에 채색, 19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이제 연꽃이 가득 피어난 연못 풍경을 그린 작품을 소개하겠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연못 풍경이지만, 멀리서 보면 마치 산수화처럼 보이는 게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갓 피어난 연꽃 봉오리, 활짝 핀 연꽃, 연밥을 머금은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의 연꽃이 정성스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연꽃의 줄기는 바람에 흔들리는 듯 유연하게 움직이는 게 곡선의 미를 잘 나타내주고 있어요. 1폭에 그려진 연잎들은 갈수록 점차 상승하여 끝에는 가장 크고 화려한 모습을 보이다 점차 하강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죠.


민화에 등장하는 연꽃은 한결 현실적이고 복을 구하는 성격이 강하죠. 민화에서 연꽃은 다른 문자와 결합시켜 다양한 길상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즐겨 활용하였다고 전합니다. 예를 들어, 연꽃과 백로가 함께 그려지면 한 번에 과거 시험에 급제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연꽃과 물고기를 함께 그리면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씨앗을 품은 연꽃은 많은 아들을 얻는다는 뜻을 담고 있죠. 이처럼 민화의 연꽃은 행복을 바라는 옛 선조들의 소박한 염원을 담는 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오직 연꽃만이 등장하고 있는 게 특이한 점인데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조용히 피어나고 사라지는 연꽃의 세계를 우리의 인생을 빗대어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련도10폭병풍>,175.6cm x 395.6cm, 비단에 채색, 19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2,3,4 전시실에서는 산수화가 많이 나오는데요.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이 있고 투박하고 단순한 느낌의 작품들도 있어서 조화로운 섹션이었어요. 여기에서는 장수, 부귀 그리고 행복의 소망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민화의 상징성 있는 호랑이가 그려진 작품 그리고 용이 그려져 있는 작품들은 실물로 보게 되어 반가웠어요.


APMA 고미술 기획전. <조선민화전> 2,3,4전시실 전경,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2 전시실은 <화조도 10폭 병풍>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화조도는 주로 꽃과 새를 소재로 해서 표현한 그림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무나 풀을 배경으로 새와 벌레가 어우러진 그림도 함께 포함이 되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선조들의 가치와 정서가 잘 녹여서 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화조도 병풍은 여러 가지 꽃과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원색의 화려함이 돋보여서 인상 깊었습니다.


각 폭에 보이는 새들은 암수 한 쌍으로 그려져 부부의 화합과 금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리는 영원히 끊이지 않는 깊은 인연을 상징하며, 새끼와 함께 그려 가정의 평화와 부부 사이의 애정을 상징해요. 머리가 하얀 백두조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같이 하얗게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새의 표현에 녹색과 청색, 적색의 물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1폭을 봄에 피는 꽃으로 시작하여 7폭 여름의 연꽃, 9폭 가을의 국화, 10폭 겨울의 매화까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병풍을 구성한 것이 보였어요. 1910년도에 그린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표현양식은 물론이고 붓놀림, 다양한 꽃의 섬세한 음영처리, 바위의 표현방식 그리고 작품 제작에 사용된 고급 물감과 대형의 병풍 크기 등으로 미루어 궁중장식 회화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화조도10폭병풍>, 183.2cm x 471.5cm, 종이에 채색, 1910.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이번 작품은 화조영모도 <화조영모도 8폭 병풍>입니다. 각 그림에는 모두 액자모양의 틀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모습이 다른 화조도와는 차이점이 보였습니다. 화려한 액자틀 덕분에 동양버전의 타로카드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위에 소개해드린 화조도처럼 다양한 동물과 새, 나무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 표현된 작품입니다.


화조영모도에 나오는 학, 토끼 그리고 개와 고양이 등등 각 폭마다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요. 작품 속에서 마치 전래동화를 읽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부부의 금슬과 장수를 기원할 목적으로 제작한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부 그림에 보이는 동물의 익살스러운 장면은 인상적이죠. 두 번째 그림에서 이 점을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두 토끼 모두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특히 암컷으로 보이는 왼쪽 토끼는 우측 발을 들어 턱에 괸 모습인데, 이 장면은 마치 오른쪽 토끼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어떠한 병풍작품들보다 유머러스함이 느껴져서 좋았던 작품이었어요.


<화조영모도8폭병풍>, 82.0cm x 366.0cm, 종이에 채색, 19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다음으로 3 전시실에 있는 <모란도 8폭 병풍>입니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을 크고 화려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옛날에 모란은 모든 꽃 중에서 최고라고 알려져 있어서 화중왕 혹은 화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조들에게 사랑을 받았죠. 심지어 중국에서는 '황제의 꽃'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모란은 주로 고양이와 나비하고 함께 그리거나, 사군자와 함께 그릴 때가 많았습니다.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모란 나무를 담고 있죠.


<모란도 8폭 병풍>의 특이한 점은 홀수 폭과 짝수 폭의 색채가 똑같습니다. 정형시조의 규칙적인 음률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작품 속 모란은 백색, 자색, 홍색의 조합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작품을 보면 모란은 꽃이 크고 색상이 화려하며 부귀화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집에 걸어놓으면 정말로 이 세상의 모든 부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번 전시에서 하나를 구매할 수 있다면 모란도를 선택하고 싶었어요. 모란은 조선 말기까지 유행이 이어져 궁중은 물론 일반 백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왕실에서는 다양한 궁중 행사를 할 때 쓰였고, 민간에서는 주로 혼례 때 사용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작품은 반복되는 모습이 평면적이고 도식화된 모습으로 주로 그려지며, 꽃 자체의 자연적 특성보다는 도안화를 통해 상정성과 장식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란도8폭병풍>, 220.0cm x 467.0cm, 비단에 채색, 19세기말~20세기초.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4 전시실에는 <호작도>가 있습니다. 흔히들 조선 민화하면 호랑이를 많이 떠올리는데, 저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작품을 접하는 순간 '드디어 호랑이가 나오는구나' 하는 마음에 매우 반가웠습니다. 작품을 보면 어미 호랑이와 3마리의 새끼 호랑이가 그려진 호작도의 일종입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정말 깊은 관계가 있는데요. 모든 사악함을 물리치는 용맹함을 상징하고, 저도 몰랐던 사실인데 은혜를 갚는 보은의 상징성도 있다고 이번 전시를 통해 배웠습니다. 호랑이가 나오는 민화에는 까치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아닐까 다를까 이번 작품에서도 무려 4마리가 나옵니다. 이는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것을 상징합니다.


호랑이가 단순화되었고 무늬가 도식적이 느낌을 먼저 받았습니다.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점 또는 다른 호작도의 작품과 차별이 있다면, 바로 호랑이의 형태와 표정이 매우 익살스러운 점입니다. 여기에서 조상들의 유머러스함이 또 보이죠.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부모의 곁에서 자손들이 천륜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전합니다. 사실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몰랐어요. 그저 가품 속의 캐릭터들이 귀여웠죠. 그래서 조선 시대판 이모티콘 캐릭터들처럼 보여서 재미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4 전시실에는 <호작도>와 더불어 복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주는 것을 상징하는 <운룡도>도 함께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호작도>, 124.1cm x 85cm, 종이에 채색, 19세기말~20세기초.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운룡도>, 168.3cm x 103.3cm, 종이에 채색, 19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5 전시실에는 병풍뿐만 아니라 벽에 걸 수 있는 작품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봉황도는 민화의 감성을 그대로 담아서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유행하던 소설 작품들을 토대로 나온 민화작품들을 보면서 옛 선조들의 작품해석을 그림으로 표현 한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전시실과 차이점이 있다면, 민화의 소재로 쓰였던 소재들이 백자와 함께 콜라보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어요. 조선의 민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APMA 고미술 기획전. <조선민화전> 5전시실 전경,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5 전시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봉황도>였습니다. 봉황은 유럽중세의 유니콘처럼 동양의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 존재하는 상상의 동물이죠. 여기 미술관에서는 작품 두 점을 대칭하여 한 세트로 전시하였습니다. 암수 봉황 한 쌍과 새끼 봉황 네 마리가 보이는데요. 화면 상단에는 오동나무도 보입니다. 예로부터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서식지이고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전설이 있는데요. 그래서 작품에 대나무 잎도 함께 보입니다.


이 작품에서 큰 특징은 궁중양식이 아닌 수묵기법을 매우 단조롭게 처리한 점입니다. 수묵기법은 번짐과 농도로 표현하는 한국의 가장 전통적인 기법이라는 점에서 <봉황도>가 의미 있습니다. 봉황도는 집안의 출입문이나 벽면에 붙여 장식했던 민화로서 각각의 집에 따라 다양한 장식 문양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봉황은 이미 조선 이전 삼국시대 때부터 그려져 왔고 고대로부터 길상의 의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컷은 봉, 암컷은 황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이 <봉황도>는 궁중양식과 민화의 중간 단계라고 볼 수 있고, 어떤 민간화가가 평민들의 감성을 반영하여 그린 민화 봉황도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봉황도>, 94.2cm x 75.8cm, 종이에 채색, 19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봉황도> 외에도 권선징악과 신분제를 뛰어넘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알려주는 소설 '춘향전'과 남가일몽, 일장춘몽과 같은 고사성어와 어울리는 '구운몽전'을 그린 작품들도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구운몽 병풍은 인생의 덧없음과 속세의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이날따라 제게 전달이 잘 되어 인상 깊었습니다.


<춘향전도10폭병풍>, 170.0cm x 457.4cm, 종이에 채색, 20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구운몽도6폭병풍>, 142.0cm x 307.1cm, 종이에 채색, 20세기 전반.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불교적인 성격을 띠는 <독성도>입니다. 석가모니의 제자 독성존자를 그린 작품인데요. 독성존자는 천태산이나 소나무 등을 배경으로 바위와 같은 좌대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희고 긴 머리카락과 눈썹, 수염이 있는 얼굴로 오른손에는 긴 막대기 끝에 쇠고리 장식이 있는 석장을,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있는 그림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독성존자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반석이나 바위 대신에 나뭇잎을 겹겹이 쌓은 대좌 위에 앉아있습니다. 석장 대신에 지팡이를 쥐고 있고 오른손에 불로초를 쥐고 있는 모습입니다. 소나무 가지와 대좌가 만들어낸 짙은 녹색의 공간에 붉은 가사를 입고 앉아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죠.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불교신앙은 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민족 고유의 정서에 불교신앙이 얼마나 깊게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성이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독성도>, 103.0cm x 90.0cm, 비단에 채색, 1828년.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APMA 고미술 기획전. <조선민화전> 7전시실 전경, 출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지금까지 <조선민화전>에 출품된 작품들을 소개해보았는데요. 모든 작품들이 하나하나 뚜렷한 개성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서 나만의 기준으로 엄선해서 소개하기가 너무 힘들었네요. 제가 소개한 작품 외에도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많으니 꼭 방문해서 관람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고미술 기획전의 작품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옛 선조들은 자손 대대로 복을 받거나 앞으로의 여생을 위한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주제는 한결같지만, 다양한 소재로 표현을 했죠. 그 상징성을 알고 나니 감상하기가 매우 쉬었어요. 지금처럼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색을 활용한 것 그리고 디테일한 표현들에서 조상들의 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차이점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전통미술은 후세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영원한 것에 중점을 둔다면, 현대미술은 추상작품을 통해 영원한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찰나 혹은 감정들 작가들의 스토리텔링, 그들의 철학을 예술로 표현한다던가 현 사회의 문제점을 캐치해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래서 감상하는 사람과 소통을 하는 성격도 있죠. 점점 사회가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로 변함에 따라 예술의 성격도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를 보고 감탄할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포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고요.


끝으로 조선후기 때 유행했던 민화는 전통예술이 상류층을 위한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나온 회화작품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상징성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와 같은 맥락인데요. 그래서 앞으로 현대미술도 민화와 마찬가지로 상류층 사람들을 위한 취미이거나, 작품들이 사치품으로 여겨지지 않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러한 문화로 나아가길 염원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다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Courtesy of APMA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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