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저드, 미니멀리즘 예술에서 얻은 깨달음!!

<Donald Judd : Furniture> 현대카드 스토리지

by 민경우

넷플릭스에서 하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시즌2>에 출연하신 선재스님께서 사찰음식에 대해 '진짜 아름다움은 비어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죠. '비어 있음'의 미학.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백이 아니라, 감상자가 채워 넣을 수 있는 정서적 여백과 깊은 여운을 의미하죠. 비어있다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동양의 여백을 탐구하며 느꼈던 이 '비움'의 가치와 서양의 비움의 가치를 비교하고 싶어 미니멀리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사찰음식의 선구자 선재스님. 출처. 넷플릭스.


제가 다녀온 전시는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린 도널드 저드의 개인전 <Donald Judd: Furniture>입니다. 이 전시회는 내년 4월 26일까지 진행하는데요. 여기에 다녀온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하나만 적어보자면 바로 미니멀리즘 전시회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미니멀리즘을 크게 선호하지는 않았어요. 그 이유는 아직 제가 미니멀리즘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고 판단했죠. 하지만 전시리뷰를 쓰는 작가로서 여러 가지 미술세계를 소개해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이 덕분에 미니멀리즘에 대해 글을 남기면서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조금 소개하자면, 미술사에서 미니멀리즘의 유행기간은 다른 미술사조에 비해 많이 짧습니다. 대략 10년 정도 골든 타임을 가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대사회에 패션, 건축 및 인테리어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및 철학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줬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 아이폰을 예로 들 수 있죠. 애플의 미학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라는 철학으로 불필요한 버튼과 장식을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에만 집중하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으로 직관적인 디자인을 구축했습니다.





본론으로 넘어와서 제가 다녀온 전시에 대해 소개하자면, '이번 전시는 그의 디자인 가구를 비롯해 판화 및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고 단순한 형태, 반복, 색채와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며 예술, 건축, 디자인을 넘나든 급진적인 실천을 조명한다.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 철학에 주목하며 202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도널드 저드의 대규모 회고전 <Judd>를 후원한 바 있으며, 이번 전시는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으로서 도널드 저드 재단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실현됐다. 전시장에서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작가가 나무, 금속, 합판으로 제작한 가구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으며, 도널드 저드의 삶과 예술이 맺은 긴밀한 관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전시 서문에서 전합니다.


<Donald Judd: Furniture> 전시를 연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전경.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우선, 가구 작품들의 설명에 앞서 워밍업으로 먼저 소개할 작품은 판화작품 <Untitled>입니다. 이 작품은 1993년 작품이고, 도널드 저드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제작된 판화 시리즈 중 일부이죠. 평생 추구한 색채와 공간의 논리가 가장 세련되게 요약된 마스터피스입니다. 자세한 설명에 앞서 하나 더 얘기하자면, 미니멀리즘의 작품에서 '심미안'을 논하려면, 일반적인 회화에서 기대하는 '예술적 영감'이나 '화려함'은 완전히 잊으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미니멀리즘의 아름다움은 철저하게 '수학적 정적'과 '물질적 명료성'에서 오기 때문이죠.


전시회에서 작품의 캡션을 보면서 감상했지만, 캡션의 내용이 다소 어려워서 글이 지루할 수 있으니 제가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적겠습니다. 우선, 작품의 첫인상은 차갑고 냉혹한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제가 갔을 때가 연말이라 그랬던 거 같은데요. 빨강과 흰색 그리고 검정 이렇게 크리스마스 상징색이 다 들어가 있지만, 흰색 격자가 주는 완벽한 비례와 딱딱한 직선들은 인간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차가운 질서와 하나같이 네모로 엣지 있게 표현한 모습이 냉정한 기하학의 크리스마스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죠. '만약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나타내는 초록색 세모 모양이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면 조금이나마 따스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떠올랐던 건 서문에서 적었던 '흑백요리사'를 방영하고 있는 넷플릭스 로고인데요. 작품을 보고 검은 바탕의 붉은 'N'을 떠올렸어요. 검정, 빨강의 강렬한 대비는 최소한의 요소로 최대의 시각적 충격을 줍니다. 이 점은 현대 브랜드 디자인의 핵심이죠. 사실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작품이 해석되기보다는 지각되길 원했습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강력한 넷플릭스의 상징성처럼 작가님 또한 자신의 작품이 감상자의 뇌리에 사물의 실재감을 즉각적으로 각인시키려고 했죠. 어쩌면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넷플릭스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널드 저드는 평생 '카드뮴 레드'라는 특정 빨간색에 집착했다고 전합니다. 작가님에게 이 빨간색은 어떤 감정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사물의 윤곽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색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시기,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강렬한 빨강과 검정의 대비를 통해 자신의 미학적 세계관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고자 노력했었죠.


<Untitled>, 60cm x 80cm, Tumba/Zorn Paper, 1993,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도널드 저드의 가구 전시회에 왔으니, 이제 가구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의 노란색 때문인지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작품인데요. <Metal Bed 111>를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스칸디나비안 모던 스타일과 닮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구를 보면,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수평과 수직의 라인만 남긴 점, 공간을 넓어 보이게 만드는 낮은 프레임 구조는 북유럽 가구들이 흔히 채택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작가님의 작품에 쓰인 노란색은 스칸디나비안의 따스한 느낌과는 달리 차갑고 엄격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이를테면 나무가 아닌 산업 현장의 중장비에서 나온 알루미늄으로 침대프레임을 만들었죠. 그래서 작가님의 노란색은 공사장의 포크레인이나 안전 표지판의 느낌. 즉, "저기에 뭔가가 있네." 같은 메시지를 인지 시키고 인간의 기분에는 관심이 없는 냉소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침대의 매트리스가 그냥 위에 툭 놓여있어요. 보통의 침대라면 매트리스가 침대 프레임에 쏙 들어가서 일체형으로 나타내죠. '쏙'이 아닌 '툭'의 느낌이 흥미로웠는데요. 작가님은 '알루미늄은 알루미늄이고 솜뭉치는 솜뭉치다.'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어 했을 거라고 보입니다.


도널드 저드는 작품들을 통해 자신이 만든 가구에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저는 영화 제목인 '은행나무침대'가 떠올랐어요. 노란 알루미늄 프레임 위에 매트리스 툭 얹혀있는 게 차가운 도시 바닥에 흩뿌려진 노란 은행잎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은행나무 침대는 천 년의 시간을 견디며 주인공들의 영혼을 담아내는 불멸의 매개체로 나오죠. 이 점이 작가님이 나무 대신 알루미늄이라는 금속을 택한 이유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나무는 썩거나 변형되지만, 가공된 금속인 알루미늄은 시간의 풍파 속에서도 형태를 잃지 않는 점에서 영원한 현재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연결점을 찾아가며 감상을 했지만, 작가님의 의도는 '침대는 침대일 뿐이다.'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저의 감성적인 느낌과 도널드 저드의 의도를 비교하여 적어보았는데요. 미니멀리즘이 얼마나 차갑고 건조한지 느꼈기를 바랍니다.

<Metal Bed 111>, 50cm x 200cm x 100cm, In Traffic Yellow, 1984,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도널드 저드는 자신이 살던 공간에 놓을 가구들을 고를 때, 시중에 파는 가구들이 너무 장식적이고 조잡하다고 느꼈다던데요. 그래서 가장 정직하고 군더더기 없는 가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재료의 정직함과 비례의 리듬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작품이 지금 소개할 <Metal Bench 113>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님의 가구 철학 중 '재료의 본질', '수학적 분할'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예를 들면, 구리에 어떠한 도색을 하지 않은 채 가구를 만들었고, 3 분할의 완벽한 균형을 측정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붉은 구릿빛 덕분인지 구리 벤치가 해 질 녘 노을을 머금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루 중 가장 찰나에 불과한 노을의 묵직한 오렌지빛을 금속의 몸체 안에 영원히 가둬둔 것만 같았죠. 하지만 미니멀리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저의 감상을 적어보자면 이 벤치는 역설적입니다. 노을이 가진 본래의 온기를 차가운 금속으로 냉각시켜, 인간적인 서사나 감정이 끼어들 틈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처럼 보이죠. 온기를 머금은 듯하나 결코 따뜻하지 않은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특유의 냉혹하고 무정한 질서를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중앙의 닫힌 칸'입니다. 벤치인데 앉을 수가 없죠. 가구가 가구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보이는데요. 이 닫힌 칸은 도널드 저드의 '보여주되, 허락하지 않는' 태도를 상징한다고 전합니다. 구리의 아름다운 빛깔로 유혹하지만, 정작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이 닫힌 칸 때문에 이 벤치에서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는 냉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정말 정교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Metal Bench 113>, 75cm x 150cm x 50cm, In Copper, 1984,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Donald Judd: Furniture> 전시를 연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전경.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지금까지 미니멀리즘의 금속가구들을 소개했는데요. 이번에는 나무로 만든 작품 <Double back bench 20>을 소개할게요. 이 작품은 작가님의 가구 디자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고 전합니다. 앞서 설명한 차가운 금속 작품들과는 달리 나무의 결이 보이는 한층 고급스러운 월넛 소재의 작품입니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등받이가 2개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에서는 찾기가 매우 어렵지만, 실제로 옆에서 보면 정말 미세하게 서로 엇갈리게 놓여 관람객이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작품을 변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어요. 일종의 가변성이라 할 수 있죠.


빨간 동그라미 친 부분이 한쪽은 앞으로 튀어나왔고, 다른 쪽은 등받이 뒤로 물러나있음.


도널드 저드는 나무 중에서 결이 단단하고 색이 깊은 월넛을 애용했어요. 저도 이번 전시를 보면서 배웠는데 금속 작품이 빛을 튕겨낸다면, 월넛 소재의 나무는 조명을 흡수하여 공간에 무게를 더합니다. 작가님에게는 나뭇결의 무늬조차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구체적인 사연이 있는 작품입니다. 이 당시 도널드 저드는 뉴욕에서 5층 건물을 개조해서 층별로 완벽한 미니멀리즘의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에는 작가님의 엄격한 공간에 어울리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장식된 거짓이 아닌 정직한 물체와 함께 생활하기를 바랐던 도널드 저드는 평평한 좌석의 넓은 벤치 위에 책을 보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미니멀리즘 아티스트에게도 인간미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내 아이들을 위한 정직한 자리'라는 작가님의 고집과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어요.


작품의 '엇갈린 등받이'는 작가님의 현실적인 육아철학도 녹여있어요. 이 당시 아이들이 같은 한 공간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은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갖기를 원했죠. 그래서 등받이를 엇갈리게 만든 이유는 한 벤치에 앉아도 시선을 엇갈리게 향하게 하여 심리적인 벽을 세워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가구가 단순히 앉는 도구를 넘어 심리적으로 공간의 벽을 나눈 점이 도널드 저드만의 육아 해결책이라고 여겨집니다. 미니멀리즘의 차가운 형태뒤에 따스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미니멀리즘에도 인간미가 있다는 걸 느껴서 인상 깊었어요.


<Double Back Bench 20>, 91cm x 261cm x 88cm, In Black Walnut, 1981,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Donald Judd: Furniture> 전시를 연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전경.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이제는 B3층에 있는 나무로 만든 작품들을 소개할게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작품은 <Slip Together Plywood Standing Writing Desk 78>입니다. 제목처럼 스탠딩 데스크이죠.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종이도 하나 얹어있어요. 아마 작가님께서 작품의 도면을 그릴 때 쓰던 가구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작품은 1990년 작품입니다. 이 당시 도널드 저드는 암 투병 중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몸이 약해졌을 텐데 스탠딩으로 가구를 만들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인데요. 작가님은 의자에 앉아 몸을 구부리는 것보다, 꼿꼿이 서서 사고하는 것이 더 명확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상판의 미세한 기울기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시각적 편의를 위한 계산의 결과이죠.


현재 이 작품은 도널드 저드가 평생 추구해 온 '단순함의 미학'이 집대성된 말년의 마스터피스라고 평가를 받습니다. 암 투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작업을 했다고 생각하니 작가님의 열정이 참 대단하다고 여겨졌고 저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 작품을 보았을 때, 그저 높고 특이한 나무 교탁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진 찍으면서 다시 한번 보니 유명한 건축물처럼 보였어요. 물론 특정 건축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해외의 유명한 미술관아님 저명하신 건축가가 만든 도서관이나 교회 등등 미니멀리즘 한 건물을 축소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축소된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니 얇은 합판의 결을 따라 정교하게 압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다른 미니멀리즘 작품처럼 엄숙해 보였죠. 특히 책상의 다리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책상다리라기보다 건물을 지탱하는 장막벽처럼 보입니다. 대담하게 뻗은 수평선의 평온함이 이 책상에서도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책상서랍이나 가림막 없이 내부의 구조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구조는 곧 미학이다'라는 철학을 보여주고 있죠.


<Slip Together Plywood Standing Writing Desk 78>, In Clear Birch Plywood, 1990,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Donald Judd: Furniture> 전시를 연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전경.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Shelf Plywood Stool 95-3>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완성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담은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죠.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풍부한 나뭇결과 단단한 구조를 가진 수납장, 혹은 침대 근처에 배치가 되어서 침대협탁으로 생각했었죠. 하지만 작품 제목을 보고 나서 이게 스툴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왜?'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작품이라 기억에 남았습니다. 보통 우리가 아는 스툴은 등받이가 없고 팔걸이도 없는 다리가 4개인 1인용 보조의자라고 알고 있죠.


가구회사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이 작품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ㄷ'자 형태의 이 가구는 침대 옆에 두면 전혀 답답함을 주지 않아 침대 혹은 다른 공간과 단단히 정착한 주는 느낌을 줘서 상당히 퀄리티 있는 협탁인데, 스툴이라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이신 프랭크 스텔라가 남긴 "생각하지 마, 그냥 봐."라는 유명한 말이 있죠. 마치 이 스툴 작품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앞서 다른 작품에서도 얘기했지만,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가구 작품에서 복잡한 감상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가님에게는 이 스툴은 그저 합판으로 만든 수평과 수직의 조합인 거죠. 이게 바로 작가님이 원했던 가장 미니멀한 생각입니다. "이게 예술인가?"라는 고민대신 "이게 내 삶에서 어떻게 쓰일까?"라는 일상적이고 정직한 반응 말이죠. 그래서 결국에 저는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미니멀리즘과 어울리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적어도 이 작품만큼은 단순하고 실용적인 생각만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저에게 작품을 보고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을 내려놓으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그러한 작품이라 전시를 다 보고도 많이 생각이 났던 작품이었습니다.


<Shelf Plywood Stool 95-3>, 50cm x 50cm x 50cm, In Sapele Plywood, 1992,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도널드 저드. 출처. 현대카드 스토리지.


도널드 저드의 개인전 <Donald Judd: Furniture>에는 미니멀리즘 가구들이 많지만, 일곱 작품만 엄선해서 적었습니다. 우선, 서문에 적었던 내용부터 정리하자면 선재스님이 말씀하신 사찰음식의 비움은 '정서적 여백'을 의미하고, 도널드 저드의 비움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입니다. 이렇게 동서양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어요. 또한, 가구회사에서 늘 상업적인 가구를 보다가 예술의 혼이 담긴 가구들을 보니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회사에서는 효율과 판매를 목적으로 뒀다고 하면 여기는 존재와 질서를 목적으로 하고 있죠. 팔기 위한 가구가 아닌, 유행도 타지 않고 오로지 공간의 본질을 증명하기 위한 미니멀리즘 가구 앞에 '가구는 이런 거다.'라고 미니멀리즘 거장이 저에게 묵직한 일침을 날리는 듯했습니다.


번외로 도널드 저드는 6.25 전쟁 당시 미 공병대 소속으로 복무하며 한국에 머문 적이 있어요. 물론 직접적으로 총성이 오가는 전투에는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극심한 혼란기와 경제적 빈곤 상태의 우리나라에서 작가님이 느꼈던 걸 생각해 봤는데요. 어쩌면 차가운 미니멀리즘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보입니다. 황폐한 풍경 속에서는 '아름다움'이나 '장식'은 사치에 불과했을 거예요. 감상주의를 거부한 도널드 저드에게는 '인간의 따뜻한 감정보다는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 이러한 진실에 매료되었을 거예요. 작가님의 고집스러운 견고함은, 냉혹한 현실 위에서 치열하게 배운 '생존의 미학'이 아닐까요?



ⓒ DonaldJudd, Courtesy of Hyundaicard Sto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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