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출산의 고통을 느꼈을 때..

by 민경우

남자인 제가 결코 도달할 수 없고, 영원히 체득할 수 없는 감각의 영역이 있죠. 바로 산모의 출산 고통인데요. 최근에 첫 출산의 경험을 추상회화로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고 해서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2월 6일,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린 이은실 작가의 개인전 <파고(Surging Waves)> 는 동양화 기법으로 제작한 총 10점의 신작회화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이 전시를 관람하기 전까지 이은실 작가님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평생 경험할 수 없는 '출산의 고통'을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마주하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저를 갤러리로 이끌었어요.


본격적인 감상에 앞서 발췌한 서문의 글을 통해, 작가님이 왜 그 치열했던 몸의 기록을 작품으로 남겨야 했는지 그 내밀한 동기를 먼저 적어볼게요.


서문에 따르면, "전시의 중심이 되는 신작들은 작가가 첫 출산을 겪으며 마주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와 그 과정에서 느낀 생경한 감각들을 다룬다. 작가는 자신의 신체가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듯한 이 비현실적인 순간을 거대한 화면 속에 투사하며,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인 생명의 투쟁으로 확장시킨다. 지하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연작들 역시 산후의 통증과 염증을 용암이나 파도와 같은 거대한 자연의 역동성으로 치환함으로써,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 필연성을 회화적 에너지로 증명해 낸다."라고 전합니다.


<Surging Waves> 전시를 연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전경. 전시 초입 부분.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Epidural Moment>, 244cm x 720cm, Ink and Color on Paper, 2025,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이제 본격적으로 1층부터 시작해서 작품 소개를 할 텐데 이번 전시에서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에피듀럴 모먼트(Epidural Moment)>입니다. 가로가 7.2m가 되는 대작이죠. 작품을 딱 마주하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온 저에게 몽환적인 세계를 소개해주는 것 같았죠. 특히 상단을 가로지르는 황홀한 빛의 줄기는 밤하늘의 오로라를 옮겨놓은 거 같았어요. 동양화의 은은한 채색이 만들어낸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받아 제 마음대로 '오로라가 드리운 몽환적인 숲'이라고 혼자 부제도 지어보았죠. 그리고 '출산'이라는 주제로 보았을 때 '작가님의 태몽이 혹시 거대한 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몽환적인 분위기에 심취했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에피듀럴(Epidural)은 의학용어로써 경막 외 마취입니다. 즉, 무통 주사를 의미하죠. 작가님은 인터뷰를 통해 "마취제가 들어오는 순간,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정신이 파편화되며 환각이 시작됐다."라고 말했습니다. 화면의 녹색 안개와 금빛 비늘은 화학적 환각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인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통증이 가장 심한 순간에 약물을 통해 그 고통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평온함이 아닌 정신이 파편화되는 환각이라고 전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고통을 간접경험 했다기보다는 환각과 맞서 싸우는 산모의 고독한 투쟁이 느껴졌습니다.



<멈추지 않는 협곡>, 207cm x 120cm, Color on Paper, 2025,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멈추지 않는 협곡>입니다. 작품을 보면서 '만약 배경지식이 없이 이 작품을 봤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과 '그저 협곡 속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작품으로 묘사가 되었겠지.' 이렇게 자문자답을 해봤는데요. 하지만 배경지식을 이미 알고 나서 작품을 보니 이 작품이야말로 고통이구나 싶었어요. 작가님은 인터뷰를 통해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파열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붉은색을 피로 본다면, 중앙의 깊은 골짜기는 아이가 나오기 위해 혈관이 터지고 점막이 찢기며 만들어낸 혈로가 됩니다.. 산모의 숭고한 희생을 상징하죠.


하지만 저에게는 숭고함 보다는 붉은색이 '피'라는 것 때문에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에피듀럴 모먼트> 작품이 마취로 인해 환각의 상태라면 <멈추지 않는 협곡>은 그 마취막을 찢고 터져 나온 극심한 통증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단순한 호기심이 해결되는 작품이라 이렇게 소개한 것도 있지만, 남성으로서 느꼈던 막연한 호기심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붉은 비명을 통해 자책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Surging Waves> 전시를 연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전경.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Stage 1 of Labor>, 150cm x 250cm, Ink and Color on Paper, 2025,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지하 1층에도 작가님의 신작들이 있는데요. 먼저 소개할 작품은 <전운>입니다. 작품을 딱 봐도 고요한 밤에 소용돌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의 모습 같아서 '폭풍전야'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은 <Stage 1 of Labor> 인데요. 직역하면 분만 1기, 즉 자궁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개궁기를 뜻합니다. 화면 중앙의 거대한 흐름은 구름이 아닌 태아를 밀어내기 위해 비틀리고 있는 자궁 입구의 근육운동으로 해석이 되죠. 그래서 온몸의 신경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시동의 순간을 풍경화로 시각화한 것입니다.


사실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분만하기 전의 작가님의 심리 상태인 불안 혹은 기대를 묘사한 작품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영문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달리 보였는데요. 남자인 저에게 이 푸른 소용돌이는 감히 발을 들일 수 없는 성역이자, 생명을 잉태한 자만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고독하고 장엄한 심연으로 보였습니다. 좀 전에 소개한 작품에서 저의 단순한 호기심을 자책했다면, 여기에서는 호기심이 경외심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새로운 세계로 맞이하기 위해 스스로를 폭풍 속으로 밀어 넣는 행위가 얼마나 무겁고 거룩한 것인지 느끼게 된 작품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인생의 소용돌이>, 160cm x 190cm, Ink and Color on Paper, 2025,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다음 작품은 <인생의 소용돌이>입니다. 작품을 보면 앞서 보신 <전운>에서 이어지는 느낌이 오죠. 이 작품은 <전운>보다 더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빛조차 삼킬 것 같은 어두운 구멍은 기존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통로를 상징하죠. 작품을 실제로 보면 사진에서 보는 것과 달리 블랙홀처럼 생긴 저 어두운 구멍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서 제가 전시를 관람한 후 좀 더 찾아보았는데요. 작가님은 이 작품을 그릴 때, 배채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배채법은 종이 뒤에서 색을 칠해 배어 나오게 하는 기법인데요. 조선 시대 초상화나 고려 불교회화에서 깊이 있고 은은한 색감을 내기 위해 사용했던 전통 기법이죠. <전운>과 <인생의 소용돌이>에서 왜 깊어 보이고 묘한 기운을 뿜어내는지 알 것 같았어요. 일반적으로 그림은 종이 앞면에 색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입체감을 준다면, 여기에서 쓰인 배채법은 한지 뒷면에 안료를 두껍게 칠하고 종이의 섬유질을 통과해 앞으로 은은하게 배어 나오게 합니다. 그래서 종이 안쪽에서부터 빛이 차오르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줘요. <인생의 소용돌이>의 어둠은 단순히 겉에 파란 물감을 칠해서 만든 게 아닌 뒤에서 밀어낸 색들이 겹겹이 쌓여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 같은 깊이감을 만들어 냅니다.


이 소용돌이를 마주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온 평온한 일상은 사실 이토록 격렬하고 어두운 심연을 뚫고 나온 사람들이 간신히 건져 올린 소중한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평범했던 하루는 이제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네요. 깊은 블랙홀 같은 고통을 견뎌내고 우리를 세상으로 밀어 올려준 모든 어머니들이 건네준, 차갑고도 뜨거운 선물처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절개>, 162cm x 130cm, Ink and Color on Paper, 2025,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절개>입니다. 여태까지 소개했던 작품들과는 달리 다소 평온하고 심플한 면이 있죠. 하지만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하나의 붉은 선이 있는데요. 이 선은 제왕절개 아니면 수술의 흔적을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작가님에게 탄생은 물리적 절개임을 의미하죠. 배채법으로 은은한 살구빛 피부의 질감이 더해져서 작품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챌 수 있었어요. 이 작품에서 대단했던 점은 단순히 '선'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점인데요. 사실 전시회를 다녀보면 대부분의 작품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오브제를 넣기도 합니다. 물론 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화려한 형용사나 부사를 모든 걷어내고 오직 선 하나로 물리적 헌신의 결과라는 메시지를 남긴 게 '너무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메시지를 떠나서 어쩌면 생각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이 길어지는 저에게 딱 필요했던 작품이 아닌가 싶었어요. 어쨌든 <절개> 작품 속 선을 보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명의 시작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신의 육체를 찢어 '기꺼이 열어준 문'이라고 저만의 해석을 한번 해봤어요. 제 마음속에서 '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문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은실 작가님의 신작들을 소개했는데요. 사실 이 당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는 작가님의 신작 외에도 3층과 40층에서 2025년 이전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작가님은 전통 동양화 기법인 배채법을 사용하면서도, 동양화스럽지 않게 파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인 것으로 유명했다고 전합니다. 전통 공간 속에서 인간의 은밀한 욕망과 사회적 금기를 도발적으로 보여줬죠. 여기에서 글로 써보고 싶은 작품들도 있지만, 이 글 제목에 걸맞게 이전의 작품들은 과감히 생략하겠습니다.


3,4층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전경. 이은실 작가님 2025년 이전 작품들. 출처 아라리오 갤러리.


이번 전시는 이은실 작가님께서 겪으신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산모의 고통을 풍경화로 표현한 것이 핵심입니다. 그저 눈으로 보기에는 몽환적이고 심미적으로 아름다움 작품들이 출산은 아름다운 축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마주한 거는 말 그대로 사투였죠. 관념적인 풍경인 줄 알았던 그 푸른 소용돌이는 사실 산모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갤러리를 나오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어머니는 지독한 소용돌이를 견뎌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괜히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싶어 지더라고요. 효도라는 건 어쩌면 거창한 게 아닌 거 같아요. 나를 위해 그 문을 열어준 당신의 수고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고 말해드리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작가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달리 예술을 보러 갔다가 '효'라는 큰 가르침을 받고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Lee Eunsil, Courtesy of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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