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짧고 귀가 얇으며 습관적 긍정과 똥고집. 평소엔 민폐 기질인데, 가끔 이게 빛을 발할 때가 있다.
‘내 새끼’라고 믿고 꿈과 희망을 잔뜩 불어넣던 물건을 놓치고 나서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래, 내 주제에. 서울도 아니고 지방 귀퉁이에서 뭘 하겠다고....’ 상심과 포기의 기운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 즈음, 딱 끊고 ‘無’의 시기를 가졌다. 일명 객관화? 한 발 물러서기? 뭐 그럴듯한 단어들을 붙여 주겠다.
경매 전문 사이트 유료 이용료가 무지막지하게 비싼 탓에 난항을 겪다가, 우연히 매매를 검색하게 됐다. 매입 가능할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시장조사랄까-거창하지만, 뭐. 사실 고백하자면 AI의 힘을 빌렸다. 소문에 정보 검색이나 요약 말고도 꽤 진지한 대화 상대가 된다기에, 평소라면 절대 안 했을 짓을 해봤다.
"나 지금 좀 우울해…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AI가 뜻밖에 꽤 쓸만한 정보를 엮어서 응원의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GPT였는지 제미나이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머릿속이 시원해지면서 돌파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구시가지 중심에는 오래된 낡은 주택들이 있고 검색에 잘 나오지 않는 매물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매매 검색을 시작했고, 발견했다. 두 번째 ‘내 새끼’를.
품에 안지 않아도 일단 마음을 주고 정성을 쏟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뿐더러 한 번의 경험이 있으니 언제든 다시 떠나보내기도 쉽겠다—는 쿨한 척.
주말에 홍대를 다녀왔다. 예상은 했었지만 외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오전에는 3분의 1쯤 되나 싶었는데, 정오를 넘기자 인파의 절반은 외국인들이 틀림없었다. 골목가에 들어서니 3~4층 주택들 사이에서 예쁘게 차려입는 젊은 여성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들이 묵을 장소가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생각하면서 또 부러웠다. 서울에는 관광객이 저렇게 많은데…
하지만, 당신들은 나의 타깃이 아닌 것이야! 라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문한 물건. 4층짜리 상가주택. 중앙동 구시가지 근처. 시장과 대학이 가깝고 최근 조성된 산책로와 옥상에서 바라본 산과 시가지 풍경이 꽤 쓸만했다, 리모델링과 숙소 세팅만으로 호스텔 운영이 가능할 것 같은 건물. 다시 쾌재와 만세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처음 건물을 놓친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 건물을 낙찰받았다면 설비공사에만 수억이 들었을 텐데-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서두르지 말라던 스승님의 조언이 새삼 와닿았다. 지금이 아니면,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얼마나 쓸데없는 건지 실감했다. 다시 만난 건물은 너무 만족스러웠다. 넉넉한 여유 공간, 탁 트인 옥상, 커뮤니티 공간으로 쓸 수 있는 지하까지. 완벽했다.
하지만, 서두르지 말자. 몇몇 건물을 더 둘러보고 천천히 결정하자며 지금 이 순간 마음을 꽉 부여잡는 중이다.
그래도 도시가스 매설 공사를 마치고 배관공사까지 마무리 중인 그 동네가 날 위해 준비 중인 것 아닌가 하는 자뻑에 빠져 있다. 며칠 동안 GPT는 수없이 많은 도면과 인테리어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그동안 들여다보지 않던 단톡방에 들어가 수많은 대화 속에서 쓸만한 정보들을 읽어 나갔다. 나와 상관없어 보일 때는 눈에 들지도 않던 글들이 이제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는 레버리지(leverage).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 삼아 자기 자본의 이익률을 높이는 것—국어사전. 레버리지를 이용해 다시 만난 건물을 내 소유로 만드는 것. 해 보자. 안되면 또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