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질
★ 7일차 글감 (9.8 / 월)
[글감]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좌절했던 순간과 그것을 극복한 나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낫질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중학생이던 언니 동창이 낫질하다 귀를 베었다는 소문이 섬찟하게 들려왔습니다.
몇 년 전엔 집 앞에 밭을 조금 빌려 참깨를 심었습니다.
혼자 참깨를 베던 남편은 검지 손가락을 베어 수술과 입원을 했습니다.
콩 단 팥 단을 모을 때는 낫을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숟가락 쓰듯 낫으로 온갖 일을 하는 엄마 아빠를 볼 때면 낫을 꼭 휘둘러 보고 싶은 이상한 끌림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제 작년부터 낫은 위험하다며 좀체 자식들에게 쥐여주지 않던 부모님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낫을 넘기시는 겁니다.
웃자라 어른 키를 넘는 들깨를 베려면 낫질이 필수였습니다.
설명을 듣고 몇 포기 잘라 나갔지만 내가 봐도 어색하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뒤에서 살펴보시던 아버지는 보다 못해 두 번째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낫은 자르는 도구가 아닙니다. 베어내는 도구입니다.
베어내려면 낫을 깊숙이 넣고 사선으로 힘을 주어 ‘톡’, ‘톡’
왼손으로 들깨 포기를 그러쥐고 밑동을 ‘톡’,‘톡’
자칫 몸 쪽을 향하면 위험하므로 왼쪽을 향해 ‘톡’,‘톡’
힘만 쓰면 위험도 하고 더디기도 합니다.
두 번의 시범을 본 이후에는 제법 낫질이 잘 되어 갔습니다.
저는 낫으로 소 꼴도, 벼도 베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들깨 베기로 소원 성취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설레고 들뜨는 마음을 아무도 모를 겁니다.
여럿이 넓은 들깨밭에 줄을 맞춰 베어나가니 금세 자리가 났습니다.
낫질이 손에 익을 즈음에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이를 앙다물어야 했지만
여전히 낫질은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뒤따라 낫질을 하는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고 조마조마했습니다.
낫질 초보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아들이 미덥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사히 들깨 베기를 끝내고 나니 너무 만족스럽고 흐뭇했습니다.
이 많은 들깨를 엄마, 아빠 둘이서 낫질로 베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밭 가에서 식구들이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며 쭈그려 앉아 계신 아버지도 흐뭇하셨겠지요.
딸도, 손자도, 사위도, 윗집 이웃들까지, 약간은 어설프지만 ‘톡’,‘톡’ 들깨를 베어내니 시름이 놓이셨을 겁니다.
작년에도 했으니 아마 올해도 낫질을 하러 갈 테고 내년에도, 후년에도 할 수 있겠지요.
큰 좌절과 극복은 없었지만 늦게 배운 낫질이 어릴 적 소원풀이였으니 해보길 너무너무 잘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