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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저 킴 Apr 16. 2022

5.202X, 맥도날드 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습격 #재습격 #팁으로 혼내주기

다운타운에서 집까지 대략 1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되돌아가야 한다.

이제 막 전쟁통 같은 시내 퇴근길을 뚫고 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급격한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침대에 눕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는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습관적 일과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고작 평소 저녁 식사시간에서 한 시간 지났을 뿐인데도 이렇게 고통스러운 허기가 느껴진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출구로 나오기까지 약 30분간의 운전 중에 미친듯한 허기를 느꼈다.

어릴 적에 유행처럼 참여했던 기아체험 24시에서나 느껴봤을 거 같은 고통스러운 공복감이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역시나 가장 먼저 보이는 음식점은 맥도날드였다.

어둑한 도로 위에 노랗게 빨갛게 빛을 발하는 맥도날드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니 반사적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파블로프의 개가 따로 없구나. 아니, 맥도날드의 개라고 불러야 좋을까...

 

엄청난 공복감, 국도에서 가장 먼저 보인 음식점. 나는 운명처럼 맥도날드에 들어서고 주차장에 차를 댔다.

문을 열고 매장에 들어가니 주문대 앞에 막 20대에 접어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여자 직원이 서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나를 맞이해준다. 매장 안은 매우 한적 했지만 드라이브 스루 주문이 많은지 슬쩍 보이는 주방 안쪽은 매우 분주하다.


"뭘로 드려요?"

"빅맥 콤보 하나 주세요."

"음료는 뭘로?"

"코크 주세요."

"드시고 가세요? 포장?"

"먹고 갈게요."

"$12.50입니다."


무인시스템 주문 기계들이 어째서 나날이 늘어만 가는지 알게 해주는 대화였다.

빵가게 재습격 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읽어 본 적 있다. (물론 빵가게 습격이라는 이전 작도 존재한다.) 새벽에 신혼부부가 총을 들고 맥도날드를 습격해서 빅맥 30개를 탈취해 맛나게 먹는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소설이었는데, 오늘 나는 그에 버금가는 황당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영수증 드려요?"

"네."


영수증을 건네받으며 주문을 받아준 직원의 손에 내 지갑에서 꺼낸 $5 짜리 지폐를 건넸다.

그 직원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 본다. 내가 건넨 지폐 색처럼 파란 눈이 반짝이며

'얘, 이게 모니?'  라고 묻는 듯, 나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얼른 답해 주었다.


"팁입니다. 당신 거예요."


이 직원의 맥도날드 경력이 얼마가 되었건 아마도 팁을 받은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말했듯이 따로 서빙 서비스가 없는 패스트푸드 음식점 등에서는 팁을 바라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다.


"오 마이, 땡큐 썰!"


조금 전까지 무덤처럼 지친 듯 주문을 받던 그녀의 목소리에 샘물 같은 생기가 넘쳐흐른다.

그저 무미건조한 허연 복사용지 같던 그녀의 얼굴에 5달러라는 이름의 명화가가 와서 수채화  점을 그리고 간 듯 활기가 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그 극적인 변화가 왠지 얄밉기까지 할 정도였다.


"케첩이나 핫소스 더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네 당신도요."


빵가게 습격에서는 주인공들이 빵가게에서 빵을 먹을 때 바그너의 음악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곳에선 바그너 대신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가 들려온다. 매장에는 나 외에 구석 테이블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노숙인 한 명이 전부였다. 그는 경찰이나 보안요원이 끌어내기 전까지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듯 엎드려 자고 있었다. 아니, 저 상태라면 끌려가면 서도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와 다 바쳐 엎드려 자는 행위에 쏟는 듯 보였다. 나는 저토록 깊게 잠든 적이 있었을까? 저 상태에서는 어떤 꿈을 꾸게 되는 걸까?

그보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저 직원에게 5불을 건넨 걸까? 내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 팁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믿었나? 팁을 받고 기뻐하는 누군가의 미소를 보고 싶었던 걸까? 그걸 보게 되면 오늘 하루의 수치와 고단함이 잊힐 거라 생각했나?

 

씹을수록 텁텁한 버거를 뱃속으로 밀어 넣으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길었던 하루. 붐비는 도로, Anil의 잔소리, 커다란 느티나무, thumbs down,

맥도날드 직원의 미소.


오후 8시 30분.

아, 이제는 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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