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느닷없이 세차를 하란다. 그동안 차에 관련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던 아내였는데 세차 이야기를 꺼내다니 내 차가 어지간히 지저분한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세차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검색해 보니 집 근처에 셀프 세차장이 있길래 다음 날 퇴근 후 그 세차장으로 향했다. 내가 못 미더운지 아내도 함께 했다. 예전에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세차도 하고 왁스칠도 하며 차를 내 몸처럼 아낄 때가 있었는데 그 사랑과 열정도 식어버리고 언젠가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세차는커녕 다 마신 음료수 캔이나 비닐봉지 조차도 차 안에 며칠씩 방치해 두는 내가 되어버렸다. 그저 비 오는 날이 자동 세차 날이었다.
왠지 워터파크 이름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평일 저녁 시간대 셀프 세차장은 매우 한적했다. 적당한 자리에 주차하고 세차를 시작해 본다.
세차 기계에 $2 동전을 넣으면 2분의 사용 시간을 준다. 물론 동전을 더 넣으면 넣는 대로 사용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제한 시간 동안 수압의 강도 및 거품, 왁스 등의 옵션을 선택하여 취향에 맞게 세차를 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다. 생각 없이 동전을 넣었다가는 허둥대다 2분의 시간이 그대로 지나가고 돈을 낭비하게 된다. 셀프 세차는 전략이 중요하다. 어떤 세차 옵션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배분할 것인가, 최적의 동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등의 전략 없이 동전을 넣었다가는 제한된 시간 안에 만족스러운 세차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다양한 세차 옵션들이 당신의 전략을 기다리고 있다.
보통 셀프 세차장에 올 때는 양동이 하나, 스펀지 하나, 세차용 샴푸, 차량용 수건 등을 준비해온다. 먼저 차 전체에 물을 뿌려주고 샴푸를 넣은 양동이에 고수압으로 물을 채워 넣어 거품을 만든 다음 스펀지로 골고루 차에 거품 목욕을 시켜준 뒤 다시 고수압으로 물을 뿌려 말끔하게 헹궈 준다. 마지막으로 수건을 이용해 물기를 제거해 주면 끝이다. $2 x2 = $4이 소요되는 빠르고 경제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세차 준비물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못했기에 아래와 같은 전략을 택하기로 했다.
중간 세기로 촉촉하게 물 한번 뿌리고 (pre-soak)
세차장에 준비된 거품 브러시로 닦아주고 (foaming brush)
마지막 고수압 물살로 헹궈준다(rinse)
물기는 자연풍에 말려보자. 총 $2 x3= $6 이 소진될 것이다.
아내의 명령에 못 이기듯 오게 된 세차장 이건만 물 뿌리고 거품칠까지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 마지막 헹굼에서 반짝이며 다시 태어나는 듯한 차를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차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난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앞으로 더 아껴줄게. 내 차야.'
세차를 마쳤을 때는 말끔해진 차와 함께 내 마음도 개운하고 뿌듯해졌다. 진작 했으면 좋았을 걸.
갑작스러운 세차 명령을 내린 아내에게 고마웠다.
고마운 아내의 보건위생을 위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세차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샵에 들려 세차 용품을 구입했다. 모든 것은 장비빨이라 하지 않던가...
세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뜬금없이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차를 함께 타고 있는 이 순간이 참 행복하고 감사한 것이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