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 (海馬, Seahorse)가 실존하는 동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학생 시절 어느 날, 같은 과 친구 J와의 실없는 대화 중 그 친구가 해마를 키운다고 듣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해마가 영화나 게임 등에서 흥미를 위해 용처럼 등장하는,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런 전설 속 생물을 집에 애완용으로 두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드래곤을 길들이고 있다 했으면 속 편하게 속아주었을 텐데, 믿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매우 그럴 싸하게 해마를 기르는 일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너무도 얄미워서 이번 기회에 나를 놀리는 것에 대해 버릇을 고쳐주어야지 하며 해마가 있다 없다에 그날 저녁 내기까지 걸었다.
전설 속의 생물이니 어디에서 급하게 구해 올 수도 없을 테지만 당장 보여주고 그 존재를 증명해 보라며 수업을 끝내자마자 J를 붙들고 곧장 해마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의 자취방에 가보니 그의 말대로 밝은 빛을 내뿜는 수조가 있었고 조그맣긴 하지만 분명 말머리를 하고 긴 꼬리를 가진 생명체가 수조 모래 바닥에 누워있었다. 해마였다. 너무 작고 움직임도 없어서 얼핏 보면 누군가 놋으로 만들어진 서랍장 열쇠를 수조에 떨어뜨려 놓은 것 같아 보였지만 그것은 분명 살아있는 해마였다.
나는 말문이 막혔고 내기에 이겼다는 승리감에 도취된 J는 마치 자기가 이 세상에 해마를 창조해낸 듯 자랑스럽게 그 생명체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해마의 실존에 대해서도 놀랐지만 그보다도 당연한 것에 대해 별다른 근거 없이 당연하지 않다고 믿어온 자신의 어리석음에 더 놀랐다.
나는 왜 해마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미디어에서 보았던 그 높은 음자리표 같은 생김새며 그런 모양을 하고서도 공기방울을 뿜어내며 힘차게 물속을 거니는 모습 (사실 실제 해마는 물에 휩쓸리며 표류하듯 둥둥 떠다니는 느낌으로 움직인다.)이 비현실적이라 느껴졌고 곧바로 '저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할리 없어!' 하고 생각을 굳혔을 것이다.
내기에 진 대가로 내가 사준 치킨을 뜯으며 저녁 식사 내내 해마 애찬을 늘어놓는 J가 정말 꼴 보기 싫었지만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다시는 불완전한 근거로 무언가를 단정 짓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세월이 꽤나 흐른 지금, 그 다짐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그날 이후에도 나는 나의 삶 가운데 얼마나 많은 해마를 만나게 되었나.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혹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강하지만 헛된 믿음.
근거 없이 삶을 오해함으로 나는 얼마나 많이 놀라고, 얼마나 많이 좌절했던가.
더 배우고 더 겸손해지길 바란다.
언제 어디서 실존하는 전설의 생물을 다시 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