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부서에 입사한 지 3달 남짓 된 그 신입 직원은 오후 5시 퇴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사를 떠났다.
마침 그의 자리는 나의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거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나는 좋든 싫든 이동 시에나 혹은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이라도 할 때라면 그의 뒤통수를 시야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꽤 오래전이라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곳 캐나다 밴쿠버, 적어도 내가 머물고 있는 이 회사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모두 알아서들 집에 간다. 물론 잔업이 남아있고 본인이 원한다면 회사에 남아 일을 계속해도 되지만 하루 8-9시간 동안의 기본 업무 시간 후에는 급여의 1.5배 정도인 overtime pay 가 적용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고 당사자들도 오히려 그 금액을 받게 되는 것이 눈치가 보여 다들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그 신입 직원의 칼퇴는 당연한 것이고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나 또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언제나 정시 퇴근을 해왔고 팀원들 에게도 되도록이면 오버타임 해가며 일하지 않길 권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칼퇴는 무언가 남들과 달랐다.
무릇 퇴근 시간 때에는 하루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오피스를 나서는 동안 꼭 같은 부서 사람이 아니어도 작은 미소와 함께 짧은 눈인사라도 건네며 나름의 여유를 부려보는 것이 보통인데, 그 직원은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듯 쏜 살 같이 매우 급하게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분명 업무 시간에 함께 일할 때는 친절하면서도 너무 굳어 있지도 않은 여유가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그였지만……그러고 보니 그 직원의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3개월이나 흘렀는데 일 마치고 같이 가볍게 커피 한잔 마셔본 적이 없다. 아니,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 직원은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떠난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의 퇴근은 매우 다급한 것이었다. 계속되는 그의 ‘문자 그대로’ 칼 같은 퇴근에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그를 마주쳤을 때 묻고 말았다.
“퇴근 후에는 뭐 하길래 매일 그렇게 서둘러서 가?”
“아, 우버 이츠 라고, 음식 배달일 하고 있습니다. 5시부터 7시까지 저녁 시간이라 배달비도 높게 받고 주문량도 많습니다. 건당 배달비가 가장 높고 주문량도 가장 많은 다운타운 지역까지 가려면 회사에서 20분은 걸리기 때문에 황금시간대를 놓치지 않으려 매일 급하게 나섭니다.”
“일 끝나고 또 배달을 한다고? 안 힘들어? 그게 돈이 그렇게 돼?”
그는 짧은 미소와 함께 오히려 나에게 되묻는다.
“원하시면 저랑 같이 하루 해보실래요?”
나는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만 짓고 다시 오피스로 돌아왔다.
그 직원이 어째서 그렇게도 서둘러 나가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다. 그러나 반면에 그가 하고 있는 ‘우버 이츠’라고 불리 우는 배달일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그러고 보니 요즘 주변에서 평일 퇴근 후나 주말에 부업으로 음식 배달일을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악명 높은 밴쿠버 물가를 감당하며 생활하려면 투 잡은 필수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적지도 많지도 않다고 여기며 감사함으로 만족하려 했던 나의 월급이었겄만, 매달 빠듯한 것이 사실이다. 월세, 보험료, 수많은 청구서들, 차 기름 값, 그리고 무엇보다 크게 한 움큼 떼어가는 세금......잠시 떠올려 보았음에도 익숙한 걱정과 짜증이 밀려온다. 그동안 보지 않으려 애쓰던 것들을 다시금 마주하게 되며 평온하던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얼마를 더 벌 수 있기에 그토록 열심인가?’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을까?’
‘나도...한 번 해볼까...?’
'배달 갔는데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역시 나는 힘들겠어...'
시계를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 내 마음처럼 어지럽혀진 책상을 정리하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동안 이미 사라져 버린 그 신입 직원의 빈자리를 보게 되니 괜한 걸 물어봤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