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와 다툰 날
대출 금리가 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날
공들여 고른 수박이 맛없던 날
몸이 아픈 날
오래간만에 집에 포장해 가려던 치킨 값이 너무 비싸 놀란 날
퇴사를 결심한 날
이런 날에 나는 어른들의 조언을 듣고 싶다.
예전에는 내 삶이 고달프다 느껴지던 날에 분명 내 곁에서 어떤 말이라도 건네주던 어른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그 어른들이 모두 사라졌다.
나는 어른을 찾고 있다. 내게 호의를 베풀고 나의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에 호통을 칠 수도 있고 진심 어린 눈빛으로 따뜻한 조언을 해 줄 수도 있는 어른이 필요해 늘 찾고 있다.
이전에는 분명 내가 찾지 않아도 내 곁에 그런 어른들이 늘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정말이지 한 명도 없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을 찾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 버린 것일까?
2.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어린 직장 후배가 갑작스레 내게 전화한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친구에게 현지에서 만난 여자친구는 이방인 생활에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고, 그녀가 떠나자 어찌할 바를 몰라 내게 전화한 것이다.
당시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구겨질 대로 구겨진 아내가 적어준 식료품 리스트가 잘 보이지 않아 좀 짜증이 난 상태였다. 한쪽 턱으로 폰을 받치고 그의 이별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지금 바빠서 좀 있다 다시 전화 주겠다 말한 뒤 끊고 말았다. 너무 매정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저녁 준비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발 빠르게 카트를 밀어야 했다.
그날 저녁 메뉴는 삼계탕이었고, 한 그릇 시원하게 비워낸 뒤 후배와의 통화도 시원하게 잊고 말았다.
며칠 뒤 후배와의 통화를 기억해 내고 덜컥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그가 이제 괜찮아졌다고 전화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별 다른 이야기도 못 건네고 통화를 마쳤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한 것인가?
3.
어른이 된다는 것을 정의하기는 어렵고 그 의미 또한 모든 이에게 다를 것이다.
나도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른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자신도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도대체 내가 필요로 하고, 되고 싶은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유년기 주일 학교 시간에 오른팔에 안전제일이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새까만 손으로 성경책을 펼쳐주던 그 선생님은 나의 어른이었다.
그의 네 번째 손가락이 왜 엄지 보다도 짧은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중국집 배달일을 하며 멋지게 오토바이를 몰아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 사다가 한 개비 내 입에 물려주던 동네 형들이 어른이라고 느꼈다.
자포자기 청춘을 찾아와 돌보고 사랑을 알려주어
나를 다시 삶의 궤도에 데려다 놓은 캐나다 어느 작은 교회 목사님은 진정한 나의 어른이었다.
그리운 어른들이 늘어만 간다.
나도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