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라이온 킹(The Lion King)〉(2019)
디즈니의 실사화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선두로 시작되었다. 그 중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 〈알라딘〉은 원작과 같은 카메라 앵글과 대사, 노래들을 사용하여 실사화 제작되었다.[1] 이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사업에서 흥행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메이크만으로도 화제가 되어 개봉 초기 수입으로 제작비를 회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라이온 킹〉 역시 개봉 후 제작비의 7배에 달하는 16억 불의 수입을 거두었다.[2] 〈라이온 킹〉(2019)의 경우 모든 장면이 CG를 이용한 디지털 이미지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실제 아프리카를 카메라로 촬영한 것과 같은 〈라이온 킹〉은 실사 영화인가? 애니메이션 영화인가? 금보상의 연구에서 실사 영화는 존재하는 현실을 카메라라는 기계적 장치를 이용하여 자동으로 캡처함으로써 사진적 양식을 대상으로 재현한다고 정의한다.(금보상 43.) 마치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촬영한 것 같은 〈라이온 킹〉(2019)은 실재를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사실적이니 실사 영화라고 할 수 있는가? 이에 관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Live Action Film(실사 영화)’, ‘Animated Film(애니메이션 영화)’의 정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는 그림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 시각예술이라 정의한다.[3] 서영주 박사 역시, 애니메이션 영화를 탄생시킨 근원적 추동력은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매혹이라 정의하였다.[4] 그렇기에 애니메이션 영화는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한 인간의 욕망임을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에 관한 또 다른 시선으로는, 생명이 없는 물체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죽음이 삶으로 전환되는 환영이 제공되고, 이는 죽음을 초월하고자 한 욕망이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남기도록 한다.[5] 아이러니한 점은 정지와 움직임, 불연속성과 연속성과 같은 동시다발적 대립 항의 근본적 메커니즘이 오히려 죽음을 되풀이하기에,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아닌 죽음을 상기시키는 패러독스를 지닌다는 점이다.(서영주, 조미라 27.)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사실성의 반영-사실성의 변형-사실성의 부재-사실성과 무관한 그 자체로의 이미지 단계로 나아간다. 모든 미디어는 실재를 재매개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모습을 취하고 있더라도, 영화 이미지는 실재하는 것과 다른 해석을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즐기는 문화콘텐츠 대부분이 시뮬라크르이며, 실재를 변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영돈 182.) 그럼에도 실사 영화는 리얼리티의 실제 이미지를 각인하고, 자국과 같은 지표적 이미지로 고착하여 삶의 모습과 구체적으로 ‘닮은’ 이미지를 재생산해낸다.(서영주, 조미라 27.) 앙드레 바쟁은 회화와 달리, 사진은 그 독창성이 본질적인 객관성에 있다고 보았다. 앙드레 바쟁에게 사진이란 카메라와 포착 대상 간의 사이에 렌즈 외에 아무것도 개재되지 않은 유일한 것이며, 이러한 객관성이 손으로 그리는 회화와 차별되는 점이라고 하였다.(금보상 45.)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실사 영화에서의 사진 이미지는 관객이 보려고 하는 것 이상으로 푼크툼의 잉여와 같이 의도를 넘어선 피사체의 모든 것들이 프레임 내에 드러난다.[6]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는 실재를 모방한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감독과 작가의 의도에 의해 주관적인 해석이 녹아든 ‘강조와 생략’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실사 영화에서의 의도를 넘어선 잉여의 실재가 아닌, 철저한 의도와 조작을 통해 새로운 시공간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서영주 512.) 이 덕분에 애니메이션 영화는 시각적, 이야기적으로 환상성과 재미를 보여준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가르는 또 다른 기준은, 프레임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실사 영화는 실재하는 세계가 카메라의 기계적 작동 원리에 의해 포착되어, 연속적으로 필름에 기록된다. 그렇기에 카메라 셔터를 누른 이후, 프레임 위에 어떠한 인위적 조작도 가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실사 영화는 ‘Shot By Shot’을 기본 단위로 한다.[7]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의 경우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인위적인 조작이 개입되어, 단일 프레임 촬영이 이루어진다.(서영주, 조미라 27.) 따라서 애니메이션은 ‘Frame By Frame’으로 움직임을 창조한다.(금보상 45.)
우리가 실사 영화를 보며 느끼는 것은 ‘실감’이며, 애니메이션이 가진 특성은 ‘비실감’이다. 하지만 최근 CG 기술로 인하여 실사 영화에는 만들어진 이미지가 합성되고, 애니메이션 영화는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이미지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전영돈 193.) 이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의 경계가 무화됨을 의미한다. CG 기술을 통해 실사화한 영화의 경우 주로 ‘비매개’의 특성을 지닌다. ‘비매개’란 인간이 미디어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여 미디어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8] 반대로 ‘하이퍼매개’란 매체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라이온 킹〉 (1994) 애니메이션 영화는 하이퍼매개의 특질을 가지고 있으며, 〈라이온 킹〉(2019)는 비매개성을 띤다. 〈라이온 킹〉(2019)은 실제 촬영 없이 모든 장면이 CG를 이용한 디지털 이미지로 제작되었으며, 영화를 구성하는 이미지는 극사실적이다. 〈라이온 킹〉(2019)은 사진적인 재현을 통해 실감을 주며 비매개 특질에 비중을 두었고, 기존의 과장과 왜곡으로 표현된 하이퍼매개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사실감을 만들어냈다. 〈라이온 킹〉(2019)은 실사 영화를 지향한 감독의 의도로, 포토리얼리즘을 표방하여 사실적인 CG 기술을 사용하였기에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의 차이, 그리고 〈라이온 킹〉(2019)에 사용된 CG 기술에 대해 언급해보았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볼 것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라이온 킹〉(2019)은 실사 영화인가? 애니메이션 영화인가? 답은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이 답에 관해 아직도 의문을 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관한 정의를 앞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 영화에 관하여 다양한 연구가들의 정의를 찬찬히 살펴보고자 한다.
애니메이션의 대중적인 정의로는 ‘숨’, ‘영혼‘, ‘생명’의 뜻을 지닌 히랍어 ‘아니마(anima)’ 또는 ‘숨‘, ‘영혼을 불어넣는다’의 뜻을 지닌 ‘아니마투스(animates)’에서 시작되어, 생명이 없는 형상에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9] 다른 정의로는 ‘움직이지 않는 고정 사물에 움직임을 창조하는 작업’이 있다. 하지만 두 정의 모두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가치를 정의하기에는 부족하다. 가장 아이러니한 동시에 애니메이션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정의는 노먼 맥라렌의 정의이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을 다루는 예술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을 다루는 예술이다. 프레임(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각 프레임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은 프레임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틈’을 조작하는 예술이다. 이 틈이 바로 그 작품의 뼈이자 살이며, 피다.
노먼 맥라렌(Norman McLaren), 1995년
이는 애니메이션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을 이용하는 예술임을 말하고 있으며, 한 장의 프레임에 보이는 정지된 이미지보다, 프레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에 더욱 집중한 것을 의미한다.(정준호 68-69.) 하지만 노먼 맥라렌의 정의도 한계를 가진다. 바로 “그림으로 표현된”이라는 부분이다. 이 특수한 정의는 노먼 맥라렌이 창조한 픽실레이션으로 깨지는 정의이기도 하다.(정준호 70.)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우리가 노먼 맥라렌의 정의에서 주목할 부분은 첫 번째로,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환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움직이는’은 실재하는 움직임을 기록하는 실사 영화와 다르게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을 애니메이터가 창조하는 특성을 말한다. 또한, ‘환상을 창조하는 것‘은 재현된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우리의 눈에 보이며, 움직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한 장의 이미지로 동세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여러 프레임을 활용하여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먼 맥라렌의 정의에서 벗어나, 정준호 박사가 새롭게 꼬집은 애니메이션의 정의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움직임에 현실의 개입을 불허하여, 그 완성 상태나 재생의 틀을 바꾸어도 재현성을 유지한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실사 영화와 마찬가지로 정지된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비물질적 상태로 현실의 개입을 불허하며, 그 ‘완성’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정준호 73.)
〈라이온 킹〉(2019)은 존재하는 현실을 기계적 장치로 캡처한 사진적 양식이 아닌, 감독의 의도로 철저하게 주관적 해석이 녹아든 이미지를 사용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또한, 〈라이온 킹〉(2019)은 카메라의 기계적 작동 원리에 의해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필름에 기록된 것이 아닌,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인위적으로 재현된 단일 프레임 촬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이온 킹〉(2019)에 등장하는 피사체는 살아있는 생물을 촬영한 것이 아닌, 실재하지 않는 형상에 단일 프레임 촬영을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냈기에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이미지가 비물질적이며, 그 때문에 현실의 개입이 불가능한 ‘완성‘의 형태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로써, 〈라이온 킹〉(2019)의 비판점을 언급하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애니메이션 영화를 찾는가? 애니메이션은 비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환상의 예술이며, 그 환상 속에서 일탈을 꿈꾸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경험한다.(전영돈 190.) 이를 통해 시각적 재미와 웃음을 얻는다. 그렇기에 영화 제작자가 관객들로부터 더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김종대, 김재호 121.) 〈라이온 킹〉(2019)은 디즈니 실사영화 기법인 포토리얼리즘 컴퓨터 영상합성기술로 만들어졌으며, 사진적인 재현으로 현실감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허구의 장면을 보고 있음에도, 늘 보던 것과 유사한 이미지를 통해 실감을 느낀다.(전영돈 185.) 하지만 실제 〈라이온 킹〉(2019)의 관객들은 〈라이온 킹〉(2019)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였는가? 관객들은 영화의 배경, 캐릭터의 극사실적이고 현실적인 표현을 인지적으로 공감했지만, 영화에 몰입하는 정서적 공감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이중적 수용 체험을 보였다.(이정연, 마동훈 175.) 이는 극사실적인 표현이 주는 현실감의 완전한 몰입을 통해 정서적 공감을 끌어내고자 하였지만, 역설적으로 하이퍼매개성을 강화시킨 역효과를 낸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의 리얼리티란 표현된 내용과 형식의 문제가 아닌, 관객의 인식, 정서적 공감과 더욱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10] 따라서 애니메이션의 리얼리티는 작품을 보며 관객이 얼마나 몰입하여 동일시를 이루는지에 관한 ‘정서적 경험의 정도’의 문제이며, 이를 위해 시각이미지로 관객을 어떻게 반응시키는가가 요점이다. 따라서, 관객은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에서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정서적 동일시를 기대한다.(이정연, 마동훈 175.) 〈라이온 킹〉(2019)는 CGI 기술과 포토리얼리즘에만 치중되어,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재미를 잃어버린 것이 아쉽다. 김영철 연구자는 논문을 통해 〈라이온 킹〉(2019) 실사화의 단점을 꼬집었다. 그중 세 번째로 등장하는 ‘캐릭터 감정 표현 및 대사’가 이 글에서 언급하였던 ‘정서적 공감’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본고 역시 〈라이온 킹〉(2019)을 보며, 이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극사실주의에 입각하였기 때문에 캐릭터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가 없음을 느꼈다.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소리 없이도, 캐릭터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지,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본고가 느끼기에 〈라이온 킹〉(2019)은 대사가 흘러나옴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감정을 알아채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디즈니에 묻고 싶다. 〈라이온 킹〉(2019) 제작을 위하여 꼭 ‘실사화’라는 방법론을 선택했어야 했는가? 〈라이온 킹〉(2019)은 원작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1994)과 유사하게 연출하였다. 단, 포토이리얼리즘의 지향으로 기존 원작이 가지고 있던 회화적인 이미지 연출과 디즈니가 지향하는 모션, ‘애니메이션 12가지의 법칙’의 과장된 표현이 사라지고, 그 밑에는 감정을 빼놓은 밋밋함만 남았다.
연출이란 관객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감성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 취해진 최선의 가시화된 의도이다.(김광환 164.) 김영철 연구자는 “실사화 리메이크에서도 독창성과 창작성, 예술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김영철 72.) 또한, 서영주 박사는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단순히 서사에 봉사하는 것이 아닌, 형식적으로 주제 의식을 제시하고 개념에의 지각을 활성화시키며 통합적인 감각경험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서영주 514.) 디즈니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 사업인 만큼, ‘실사화의 흥행 보장’이라는 손쉬운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 작품성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1] 김종대, 김재호, 「애니메이션 사건 속 정서분할과 정서판정 모델」, 한국과학예술포럼 제24권, 한국과학예술융합학회, 2016, 119-134쪽.
[2] 김영철, 「동물애니메이션의 원작과 실사화된 영화에 관한 비교 연구 -<라이온 킹>(The Lion King)을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통권 제59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20, 51-75쪽.
[3] 전영돈, 「애니메이션의 본질적 지향점에 대한 고찰」, 애니메이션연구 제17권 제4호, 한국애니메이션학회, 2021, 180-199쪽.
[4] 서영주, 「이항대립(二項對立)으로부터의 탈주」,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통권 제41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15, 511-531쪽.
[5] 서영주, 조미라, 「애니메이션영화에서의 죽음-이미지 연구」,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통권 제52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18, 25-48쪽.
[6] 김광환, 「<라이온 킹>에 나타난 정서표현의 시각이미지 분석: 그레이브스 명암이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통권 제15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09, 73-88쪽.
[7] 금보상, 「애니메이션, 실사영화, 디지털영화의 프레임과 미장센 특성 비교연구」,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통권 제11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07, 41-53쪽.
[8] 이정연, 마동훈, 「극사실주의 실사화 영화의 재매개: 애니메이션 실사화 리메이크 〈라이온킹〉을 중심으로」, 2020년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추계학술대회 초록집,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2020, 174-175쪽.
[9] 정준호,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애니메이션의 매체적 특성과 정의에 관한 연구」, 디지털영상학술지 제14권, 한국디지털영상학회, 2017, 63-86쪽.
[10] 김광환, 「〈뮬란〉과 〈라이온 킹〉에 나타난 색채스타일 비교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6권 제11호, 한국콘텐츠학회, 2006, 161-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