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운드 디자인 수업을 통해 감상했던 많은 영화 중 감명 깊게 보았던 것은 <CODA>(류이치 사카모토), <쉐이프 오브 뮤직>(Alexandre Desplat), <일포스티노>이다. 그중에서도 감상문을 쓸 주제로 <CODA>를 꼽은 이유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에 대한 태도가 아닐까?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 장르를 다룬다. 다큐멘터리 <CODA>와 다양한 논문을 통해 류이치 사카모토가 클래식에서부터 YMO 활동의 전자음악, 민속음악, 현대음악, 사운드 스컬쳐를 활용한 영화 음악까지 두루 두각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적인 배경에서 클래식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피아노라는 악기는 특히 빼놓을 수 없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도쿄 예술 대학에서 배운 클래식 음악적 지식을 기본으로, 클래식적인 견고한 음악적 밑바탕 위에 전자 음악, 현대 음악, 인상주의적인 화성적 색채, 미니멀리즘 음악, 대학원에서 전공한 민속 음악 등 다양한 음악적 기법을 사용하여 본인만의 색을 표출한다. 어떠한 장르에도 국한되지 않고 클래식 외 하우스, 힙합,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에 접근한다.[1]
그렇기에 류이치 사카모토는 <CODA> 인터뷰에서도 피아노를 기반으로 음악을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마츠모토 다미노스케에게 작곡을 배우던 10살 무렵, 바흐와 베토벤을 좋아했으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에게 푹 빠졌고, 단순하고 명료한 음악을 추구했던 사티를 통해 클래식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였다. <CODA>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쓰나미에 의해 물에 잠겼던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쓰나미 피아노를 잠시나마 연주했던 짧은 순간마저도 그곳엔 그의 감정이 실려 있는 듯하였다. 사운드 디자인 수업에서 디지털을 통해 키보드를 누르면 현악기가 연주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떠한 울림도 없이 명확하게 현악기가 구현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가 선보인 동일본 대지진 위로 공연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그러한 디지털 사운드와 비교도 되지 않는 깊이를 보여준다. 실제 악기를 연주할 때 실리는 힘, 연주되는 타이밍 속에서 연주자 고유의 감성과 감정이 담긴다. 연주자 특유의 연주 습관들이 담기기도 하고, 슬플 때 무거운 소리, 화가 날 때의 날카로운 소리, 기쁠 때 가볍고 경쾌한 소리들이 모두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한다. 조율이 잘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연주는 정말 훌륭했다. 잠시나마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멜로디와 그 멜로디를 연주하는 섬세한 손길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율이 잘된 피아노마저도 이러한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쓰나미 피아노라면 어떻겠는가? 쓰나미 피아노는 키보드를 통해 미묘한 차이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에 한계가 있는 디지털 사운드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물에 잠겨 조율이 엉망이 된 쓰나미 피아노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만나 새롭게 쓰인다. 쓰나미 피아노를 친 소리가 그의 음악에서 일부가 되어 구성된다. 활용조차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무언가를 류이치 사카모토는 과감하게 다가가 연구하고 악기로 활용한다. 이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쓰나미 피아노를 자연으로 되돌아간 소리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CODA>에서 산업혁명 이후 완벽하게 만들어진 피아노는 인간이 억지로 조율한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긴다고 말한다. 억지스러움, 부자연스러움을 지양하며 그 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간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와 같이 피아노를 기반으로 음악에 접근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가 동경하는 사운드는 따로 있다. 외부의 소음에 묻혀 울림이 지속되지 않는 피아노보다 영원한 소리를 동경한다. 지속되고, 사라지지 않는, 약해지지 않는 소리를 동경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점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존 케이지와 백남준에게 관심을 가졌고, 플럭서스와 네오다다이즘 같은 운동에 빠져 프리재즈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후에는 라벨,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바르토크, 메시앙, 블레즈, 슈톡 하우젠, 베리오 등 아카데믹한 현대 음악으로 관심을 넓혀 나갔다. 후에는 드뷔시와 사티. 그 외에도 존 케이지, 브람스, 미니멀 음악가들의 영향으로 여러 시대의 작곡 기법을 수용하는 방향성을 가진다.[2]
<CODA>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산속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두드리며 소리를 채집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생각하는 음악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날마다 소리에 둘러싸여 살지만, 보통은 그런 소리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귀 기울여 들어보면 재밌어요. 음악적으로도 흥미롭고. 그 소리들을 내 음악에 넣고 싶어요. 거기에 악기와 외부 소리를 더해서. 뭔가 더 하나 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사운드에 관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러한 접근은 존 케이지를 떠올리게 한다. 음의 인위성을 반대하고, 일상에서 발생하는 소리 역시 음의 자격을 갖는다고 여긴 케이지는 일상의 삶과 예술이 융합되는 것을 지향하였다.[3] 류이치 사카모토의 작품 중 실험적으로 주목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로 Future Boy(1986)는 미래파의 20세기적 패러다임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싶다는 동기로 만들어졌으며, 마리네티의 컨셉이 된 ‘미래파 선언’을 샘플링하거나 호소카와 슈헤이의 텍스트를 컴퓨터에 낭독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BTTB(Back To The Basic)(1998)-Prelude는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일종의 규칙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한 음씩 귀로 확인하여 세팅하였다. 피아노의 현에 빨래집게와 볼트, 고무와 같은 물건을 끼워 사용하였다.(이보경 24.) 이는 존 케이지의 <준비된 피아노>를 연상시킨다. <CODA>에서는 피아노 외에도 악기를 새롭게 시도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타악기인 심벌을 현악기의 활로 연주를 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오케스트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악기를 활용하여 음악에서 하나의 요소로 이용한다.
이뿐일까, 류이치 사카모토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을 언급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에 관하여 또다시 정의한다.
타르코프스키 감독 작품 속엔 물소리도 있고, 바람 소리에 발자국 소리도 들어있죠. 다양한 소리가 풍요롭게 표현돼 있어요. 그에게 사물의 소리란 깊은 애정과 숭배의 대상이었죠. 그래서 사물의 소리와 그의 사운드트랙은 아주 특별한 관계가 있어요. 그의 영화 속에는 복잡한 음향 세계가 존재해요. 그런 면에서 그는 음악가라고 할 수 있죠.
류이치 사카모토는 창문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녹음하기도 하고, 양동이를 머리에 쓰고 비를 맞기도 한다. 어쩌면 보통 사람의 눈엔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그의 음악 세계를 더 넓히고 풍요롭게 만든다.
이러한 풍부한 사운드 스컬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 음악에도 사용이 되는데,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 음악 작업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 음악은 결코 클리셰처럼 만들어지는 얇은 음악이 아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영화 속 주제가 되는 인물의 감정이나 장소에 모티브를 부여하여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음악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 외에도 <CODA>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을 추모하는모습과 리쿠젠타카타 중학교에서의 동일본 대지진 재해 피난소의 위로 연주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연주에서는 류이치 사카모토만의 신념을 담아, 감정을 실은 음악을 선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1992년부터 인식하였던 환경 문제를 라이프 오페라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 <오펜하이머 아리아> 등을 통해 표명하였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 범주가 작은 작곡가보다 더욱 넓고 풍부한 의미를 가진 ‘예술가’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접목하여, 류이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러하다.
[1] 윤수지, “반복의 관점에서 본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적 특징 연구 : 필립 글래스와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상명대학교, 2016), 1-109.
[2] 이보경, “류이치 사카모토의 <Sonatine> 분석 : 라벨의 <Sonatine>와 비교분석” (석사학위논문,상명대학교, 2012), 1-66.
[3] 박수민, “카디프와 밀러의 사운드 설치에 나타난 공간 체험 연구” (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2016),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