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1968년 좀비의 장르를 연 첫 영화이다. 조지 로메로는 대중에게 좀비를 각인시키고, 좀비 장르의 원형을 제공한 최초의 감독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대중을 매료시켰는지, 1960년대 말에 왜 ‘좀비’라는 괴물이 등장하였는지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1960년대 말 좀비 영화 산업이 성공을 이룬 것에 관해 말하기 이전, 우리는 ‘좀비’의 원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좀비’는 아프리카 무속에서 기원하였다. 아프리카에는 시체를 부활시켜 노동시킴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는 의식이 있었다.[1] 그리고 이것이 아이티 부두교에서 변형되었고, ‘좀비’는 노동자성을 띠게 된다. 부두교에서는 마법사가 노예를 부리기 위해 주술로 시체를 살려내거나, 산에서 떼를 짓고, 모여 사는 좀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이티는 스페인, 프랑스, 도미니카 공화국, 미국에 의해 차례로 식민 통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티 부두교에서 발전한 ‘좀비’는 식민 정책과 노예 정책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좀비는 그 원형부터 하층민이자 억압받는 신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식민 정책으로 발전한 좀비의 개념은 미국으로 전해진다.[2]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좀비의 전염성이다. 좀비는 이빨로 사람을 물어, 같은 좀비로 변하게 만든다. 그리고 곧 좀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사람은 소수자가 되어 좀비를 피해 숨는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감독 조지 로메로는 ‘혁명’에 대한 작품이라고 칭했다.[3] 즉 ‘좀비’는 기존의 것을 뒤집어 엎을 만한 강력한 전복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 존재는 곧 사회적 부패를 은유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바로 이 지점이 관객을 매료시킨 좀비의 특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1968년인가? 1968년은 세계적인 사회적 분출과 격변의 시기였다. 미국은 대외적으로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와 식민지화 실패로 국제적 위상이 실추되었다.[4] 이에 1968년 1월 베트남 전쟁의 반전 운동이 거세졌다. 같은 해 4월에 일어났던 마틴 루터 킹의 암살은 컬럼비아 대학 점거 사건으로 이어지며, 이 사건에서 신좌파의 반전운동과 흑인 민권 운동이 결합하였다.[5] 이후 컬럼비아 대학 점거 사건을 배경으로 여성해방운동이 등장하였다. 미국 68은 인종, 민족, 젠더, 섹슈얼리티 등 다층적인 주체들의 활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도덕주의적 성격의 사회적 보수주의와 신보수주의, 자유주의적 흐름이 혼재되었다. 즉, 새로운 가치 규범이 주창되는 동시에 기존 가치와 충돌하는 시기였다.
‘좀비’는 왜 1960년대 말에 등장했는가? 이는 좀비가 새로운 질서에 대한 억압된 욕망 분출의 양상이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68혁명 이후 기성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갈구하던 미국 젊은 세대의 갈망이, ‘좀비’라는 존재를 앞세워 무정부화시키고, 기존 사회의 제반 시스템을 뒤엎어버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좀비를 사살하는 백인 수색대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둔한 좀비를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으로 사살하는 백인 남성들의 모습. 그리고 주인공으로 세워진 흑인 남성 벤을 사살하는 모습은 심지어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의 암살을 연상시킨다. 당시 조지 로메로가 영화를 통해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좀비’라는 주제가 주류 영화계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와 동부 영화 권력에서 자유로운 독립영화 제작 방식으로 미국 사회의 불의와 소수자의 차별을 비교적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여성 재현 방식이다. 처음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바브라’는 자신의 오빠가 괴물에게 당한 이후로 1시간 30분짜리 영화에서 20여분 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말만 하지 못하면 다행이다. 바브라는 좀비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도망쳐 들어온 집에서는 벤에게 늘 돌봄 받으며, 주인공의 자리에서 밀려나 주변부에 위치한다. 바브라는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정적이고 나약한 존재로 표현되었다. 바브라는 가족 공동체의 남성을 잃고, 또 다른 남성인 벤에게 의지하여 남성 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 화법에 종속된 여성으로 재현된 인물이다.[6] 그리고 끝까지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브라는 멜랑콜리에 빠져, 좀비들에게 속절없이 당한다. 1960년대 흑인을 주인공으로 세울만큼 진보적인 조지 로메로의 전복성이 여성 캐릭터에게는 미치지 못한 것일까? 영화 상영 이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비판받았고, 이에 조지 로메로는 시체 시리즈 2 <시체들의 새벽>에서 여성 캐릭터를 발전시켰다.
아이티 부두교에서 변형된 좀비는 노동자성과 전염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다른 때도 아닌, 1960년대 말 이 영화가 성공한 이유는 당시 미국의 시대 상황에 있다. 다층적인 주체들이 분출하고 격변하는 동시에 기존 가치가 충돌하였던 1960~1970년대의 미국에 ‘좀비’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좀비는 날카로운 이빨로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고 혁명을 일으켜, 미국에 큰 열풍을 불러일으킨다. 여성 재현 방식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좀비 장르를 정착시키고 당시 미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1] 김기홍.(2019).[공공성으로 본 영화이야기] 좀비와 공공성.월간 공공정책,161(),102-107.
[2] 김민오. "좀비영화의 시대반영성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2014. 서울
[3] 권혜경.(2009).좀비, 서구 문화의 전복적 자기반영성.문학과영상,10(3),535-561.
[4] 이주영.(2017).1970년대 미국 인권정치의 등장.미국사연구,46(),249-282.
[5] 안효상.(2007).1960년대 미국의 새로운 세대 형성과 학생 운동.인문논총,(58),41-68.
[6] 김태형.(2021).좀비 영화 속 여성 재현의 문제: 조지 로메로 영화를 중심으로.국제학논총,34(),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