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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e Feb 06. 2021

빈필 신년 음악회는 왜 유명한 걸까?

발새..? 왈츠요..




무거운 문을 활짝 열며 시작되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




창 밖의 요란한 종소리에 잠이 깬 느지막한 아침.


커튼을 걷어 새해 첫날의 날씨를 확인하고, 6-7년 정도 된 낡은 노트북 앞에 앉아 독일의 공영 방송인 ZDF를 틀어놓는다. 웅얼거리는 노트북을 라디오 삼아 간단하게 방을 정리한 뒤, 부엌으로 가서 간단하게 떡국을 끓여내면, 그제야 건조하던 독일의 겨울에, 따스한 온기가 방을 감싼다.


책상 앞에 앉아 평상시에는 잘 보지도 않던 독일 방송들을 나이를 한 그릇 먹으면서 보다 보면, 11시가 넘어 곧 화면에서 어딘가의 문이 열리는 것이 보인다. 황금빛이 가득한 비엔나의 Musikverein이 비춰지면서 튜닝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A 선율과 함께, 새해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비엔나 필하모닉(이하 빈필)의 신년 음악회란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새해의 문을 열어주는 개념을 가진 특별한 연주회이다. 과거 예술의 중심지였던 비엔나의 음악과 무용, 그리고 오스트리아 특유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 빈필은 이 음악회를 통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클래식 음악이란 어디에서 탄생되고 어떤 식으로 지켜져 왔는지 보여준다. 그들에게 신년 음악회란 새로운 시작과 함께, 과거의 전통을 꾸준히 지켜나갈 것을 의미하는 다짐이다.



하지만 매년 화려한 꽃과 금으로 장식된 홀에서 각 국의 재계 인사들과 고위 정치인들을 발견할 수 있는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어떻게 그 많고 많은 신년 음악회들 사이에서 유독 유명해진 걸까?









1. 고용 문제 (정통성과 이슈)



전 세계인들이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라데츠키 행진곡' 이 매년 앵콜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는 만큼 비엔나 필하모닉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 빈필은 굉장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고 있는 오케스트라 중의 하나이다.


1864년 비엔나 필하모닉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빈 필하모닉은 오직 비엔나에서 활동하는 남성만을 뽑는 단체로 악명이 높았다. 거기에 더불어 빈필은 과거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파생이 된 단체인만큼 과거에는 반드시 비엔나 슈타츠오퍼 출신의 음악가만을 채용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었다. (몇 달 전 빈필에서 채용공고가 났지만, 비엔나에서 활동한 사람들로 제한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도 남아있는 단원들의 이력을 보면 반드시 슈타츠 오퍼를 3년 이상 거쳐야 입단이 가능한 듯하다. 빈 필하모닉의 첫 여성 현악 연주자는 27살의 비올라 연주자로서 2003년 신년 음악회에 등장한다.)




2000년대 초 차별적인 고용 문제로,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 못 받게 될 수 도 있었던 상황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150프로 정도 더 잘해야 한다, 그들의 자리는 부엌이다. “라는 발언을 하던 과거의 차별적인 면모를 수그러뜨리게 된다. 단지 여성으로서의 교양을 뽐내기 위해서 배워왔던 피아노가 아닌 전문적인 커리어를 위해 악기를 해오던 여성들은 그들이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음악계에서 괄시를 받으면서도 하나둘씩 그렇게 자리를 하나씩 채워나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빈 필하모닉에는 동양인 단원이 단 한 명도 존재한 적이 없었으며, 지금도 출생지가 오스트리아인 동양계 혼혈이 두어 명 존재할 뿐이다.









2. 비엔나 왈츠 (독창성)




그러나 사실 빈필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다른 교향악단과 어딘가 다른 곳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이 것은 그들이 거의 병적으로 비엔나 사람들만을 채용하는 이유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비엔나 왈츠는 비엔나에 거주 중인 비엔너만이 제대로 연주해 낼 수 있다는 그들만의 믿음이다.


그들이 비엔나 음악의 꽃이라고 주장하는 비엔나 왈츠에서는 몇 가지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데, 그 특징이란 삼각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3박자 춤곡의 리듬이 어딘가 어그러져있다는 것이다.

동영상을 들어보고 한 번 비교해 보자.



Andre Rieu - Johann Strauss Orchestra
Riccardo Muti - 2021 Wiener Philharmonie





확실히 첫 번째 동영상을 보고 두 번째 동영상을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박자가 어그러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박 중 1박이 악센트로 존재하는 일반적 춤곡과는 달리, 비엔나 왈츠의 악센트는 제 2박, 그 2박보다 아주 약간 선행하는 선입음(Anticipated Beat)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더 한층 자연스럽게 흐르는 라인을 만들며 추진력과 회전력의 원천이 되는 스윙을 주게 된다.




실에 메단 구슬을 흔들면 가장자리의 속력과 중간의 속력이 다른 것처럼 왈츠 또한 일정한 속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박자마다의 속력이 각각 다르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왈츠란 첫 번째 박자에 강박을 주며 풀스(pulse)를 첫 박에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지만, 빈필의 왈츠는 특이하게 강박은 첫 번째 박자에 주되, 풀스는 두 번째 박자에 느낄 수 있도록 연주가 된다. 그리고 이 복잡하고도 단순한 리듬은 빈필의 자존심이자 그들의 프리미엄 마케팅에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3. 프리미엄 마케팅



프리미엄 마케팅이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보통 명품 브랜드들에서 vip 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마케팅 종류 중 하나이다. 빈필 또한 관객 대상의 마케팅에서나, 단원 대상의 마케팅에서나 vip 만을 위한 마케팅을 펼치는데, 그것은 소수의 인원만이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사실 그들의 자부심 또는 오만함은 사실 마케팅에서 그들의 실력보다는 조금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미 빈필의 정통성은 애초에 이 오케스트라가 과거 오스트리아의 왕정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인정이 되는 바이며, 또한 오랜 기간을 합스부르크 왕정, 그리고 히틀러 등 권력자들의 도구로 이용됨으로써 마케팅에 필요한 이슈성 또한 무궁무진한 편이다. 거기에 덧붙여 그들만이 연주할 수 있다는 비엔나의 왈츠와 음악은 그 자체로도 그들을 홍보하기에 아주 좋은 요소가 된다.


리듬과 음색의 독창성,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통성, 그리고 소수의 권력자들만을 위해 연주되던 과거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싶은 재계의 유명인사들, 그리고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항상 기사화될 수 있는 이슈성까지. 그들의 오만함은 비로소 왈츠의 3박자처럼, 마케팅을 위한 완벽한 3 요소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빈 필의 신년 음악회는 늘 슈트라우스의 왈츠로 마무리된다. 요즘에서야 Carl Michael Ziehrer, Franz von Suppè, Hans Christian Lumbye와 같은 슈트라우스 가문이 아닌 작곡가들의 곡들 또한 연주되기도 하지만, 초창기 1939년에서부터 1952년까지의 신년 음악회에서는 슈트라우스 가문의 곡들만이 연주되었다. 이는 나치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써 출발한 빈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의 비엔나는 카페 문화 또한 화려하게 발전하고 있었는데, 이는 왈츠의 경쾌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전쟁의 어두움을 눈 가리기 식으로 덮으려 했던 빈필의 양면성과 더불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비좁고 어두운 방을 떠나 넓고 화려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비엔나 사람들의 회피성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https://www.wienerphilharmoniker.at/de/konzert-archiv

빈필 역대 연주 레퍼토리 모음.

찾다 보면 신년 음악회가 탄생한 1939년, 히틀러 탄생 50주년 연주회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권력자들을 위한 정치적 도구에서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전 세계의 90여 국으로 송출이 될 정도로 대중적이지만, 결코 대중을 위한 음악회는 아닌 이 독특한 음악회는 현대에 이르러서야 과거의 전통성이라 부르던 시대착오적 마인드를 조금씩 개선해 나가며 새로운 도약을 꾀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케스트라 자체가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쳐있고 개선을 진두지휘할 상임 지휘자가 없다는 점과, 베를린 필하모닉과 같은 유명 오케스트라보다 120년 정도 느리게 여자 지휘자를 받아들일 정도로 매우 보수적으로 느리게 변해가고 있는 점을 보아하면 새로운 도약이 그다지 쉬울 거 같지는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망할리는 없다는 것이 빈필의 장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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