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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e Feb 22. 2021

또모? 그 음악하는 또라이들 모임?

뉴미디어 속의 클래식

최근 클래식계에서는 유튜브 플랫폼에 뿌리를 두고 있는"또모"라는 단체가 꽤 유행이다. 3년 전부터 시작해 현재 48만 명이라는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이 단체는, 클래식계에 관심은 있었지만 쉽게 발을 들이지는 못했던 '뉴비'의 영입을 실질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중이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꽤나 젊은 세대들에게 연령층이 몰려있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또모의 영상들은 위의 사진들처럼 유튜브의 정석이라고도 할 만큼 드립과 어그로성이 뚜렷하다. 꽤 다수의 사람들은 또모를 통해 유입된 새로운 클래식계 소비자들의 영입을 반갑게 환영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또모의 행보를 품위 있게 유지되던 정통 클래식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어뷰징(abusing : 오용, 남용)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유튜브 제목의 정석이라 할 수 있지..



또모를 제외하고도 유튜브의 첼로댁, 펄스 퍼커션, 레이어스 클래식, 더 나아가 트위치의 요룰레히까지. 과거 철저히 오프라인으로만 운영이 되던 음악계는 최근 영상 플랫폼의 인기가 시작되면서 인터넷에 기반을 둔 전문 연주자들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들은 18세기, 19세기에 작곡된 곡들 또한 연주하지만, 그보단 상대적으로 최근에 작곡된 뉴에이지나 드라마/영화 Ost, 나아가서는 게임 음악을 자주 연주하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게 된다. 



우리는 보통 최소 100년과 같이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을 클래식이라고 부른다. 클래식이란 단어는 음악계뿐 아니라 패션계나 미술계에서도 흔히 이용되는데, 여러 분야를 통틀어서 클래식이란 전통적인 것,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시대를 초월하는 고상하고 중후한 이미지 일컫는다. 1850년대에 창립된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들을 수식할 때 빼놓지 않고 따라다니는 단어 또한 클래식일 만큼 클래식과 전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클래식이라고 인식하며 판단해야 할까. 






16세기의 르네상스, 17세기의 바로크, 18세기의 클래식, 그리고 19세기의 로맨틱까지. 클래식 이란 단어는 사실 모차르트와 하이든 그리고 베토벤의 작곡 형식을 이전의 바로크 문화와 구별 짓기 위해 독일 문학의 바이마르 고전주의에서 따온 말이다. 우리가 흔하게 클래식 음악이라 일컫는 오래된 유럽의 음악은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고 통틀어 지칭하는 것은 유럽의 음악은 18세기부터 권력자들의 문화가 아닌 일반 대중들의 문화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흐가 활동하던 17세기 바로크 시대에서 하이든의 클래식이 새로운 음악이었을 테고, 베토벤이 로맨틱의 문을 열었을 때도 이것 또한 음악계에서는 새로운 문을 여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늘 기존의 전통을 존중하고 과거의 작곡가들이 잘 다져놓은 정통성의 길을 걸으며 그들만의 독창적인 곁가지를 만들어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하듯이 당시에도 너무 독창적으로 음악을 작곡한다는 이유로, 좋은 멜로디와 괜찮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작곡 형식에 근본이 없다는 등의 혹평을 받은 곡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베를리오즈<환상 교향곡>은 당시의 내로라하는 유명 비평가들에게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라는 평을 받았으며, 심지어 당시 독일 음악 비평계를 주름잡고 있던 슈만에게도 아래와 같은 평을 받게 된다. 




베를리오즈는 해설 책자에 우리가 그의 교향곡을 들으며 무엇을 생각하면 좋은지를 적어놓았다. 독일에서는 이런 식의 이정표가 왠지 품위 없고 사이비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간단히 말해, 개인의 내밀한 면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민감한 독일인들은 자신의 생각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조종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전원 교향곡>에서도 듣는 이가 작품의 성격을 추측하도록 맡겨두지 않고 베토벤이 개입한 것이 독일인에게는 모욕적인 일이었다. 

인간은 천재의 작업실을 보지 않으려는 나름의 경외심을 가지고 있으며, 창조의 근원과 도구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자연이 흙으로 뿌리를 덮어주어 세심함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무엇보다 프랑스인을 위하여 작곡했다. 프랑스인들은 우아한 겸손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해설 책자를 손에 들고 읽으면서 같은 나라 사람인 베를리오즈가 모든 걸 훌륭하게 해냈다며 박수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 음악과 음악가/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 슈만




악장마다 붙여진 부제뿐 아니라 전체적인 소설을 만든 뒤 작곡을 한 듯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음악은 아니지만 꽤 듣기 좋은 소리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정통의 클래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베토벤이 9번 교향곡 <합창>에 기악 음악과 성악을 혼합해 새로운 형식의 교향곡을 만들어내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교향곡의 새로운 곁가지를 만들어냈지만, 그가 놀라울 정도로 비평가들에게 호평만을 받은 것에 비하면 베를리오즈의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라는 평은 과하지 않은 처사가 아닐 리 없다. 


이렇게 평가가 갈린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베를리오즈가 의예과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정통적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과 정통은 같지만 꽤 다른 뜻을 지니고 있는데, 전통이란 과거로부터 전해진 문화유산을 뜻한다면, 정통이란 뿌리가 되는 중심을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일컫는 말이다. 베토벤이 어려서부터 독일의 유명 작곡가들에게 지도를 받으며 천천히 바로크부터 그 바로 앞의 하이든의 음악까지, 정통의 음악교육을 받아 전통적인 독일의 음악을 해온다는 프레임이 박혔다면, 베를리오즈는 그저 정통의 교육도, 대대로 내려오던 형식을 유지하지도 않은 이상한 음악을 작곡하는 어디서 굴러온 돌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는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자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사실 현대의 사람들이 또모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클래식계의 어뷰징이라고 지적하는 것들은 사실 위의 모욕적인 언사를 행한 일부 비평가들처럼, 보수적인 기득권의 저항과 다를 게 없다. 한 우물에서 고여버린 관계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찾기를 원한다면 인터넷에서의 기회비용이 오프라인의 관계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적게 들고 안전한 편임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뒷말을 옮길 겹 지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부딪힐 일도 없으니 거리낌 없이 자신의 관점을 더 솔직하게 말하는 경향도 있으니 말이다. 무조건적으로 인터넷에 사기꾼만 있다고 믿던 과거와는 달라졌다. 수십만의 팔로워들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돈을 버는 세상이고, 누구 말 따마 관종이 돈을 버는 시대이다. 오프라인이 아닌 인터넷으로 돈을 버는 새로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터넷이 없었던 세상에서 살아왔던 과거 하나만을 믿고 그것들을 비난한다. 


물론 그것이 그들이 행해왔던 정통의 방식임은 잘 알고 있다. 브람스가 정통 독일의 음악 계보를 이어받아 당시의 비평가들에게 그의 교향곡 1번을 들려주고 난 뒤, 그를 베토벤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찬사를 받은 것과 같이 아주 정통적인 방식이다. 그렇지만 베를리오즈의 서툰 음악이 표제 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을 노크하며 새로운 방식의 클래식 음악을 만들어냈듯, 사람들은 늘 새로운 방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전통이든 나쁜 전통이든, 전통이 전통 그 자체로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으로 암묵적으로 약속된 문화가 한몫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자들만이 정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현재 방송계는  tv의 시청률이 떨어짐과 동시에 뉴미디어 쪽으로 시선을 돌려 개인 유튜버들 밖에 없었던 유튜브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정통을 유지하기 위해 유튜브와 같이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플랫폼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음악계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 정통이 아닌 시작이었을지라도, 훗날 미래에 정통의 계보를 얻게 되는 것은 과거에 머물러 도태되지 않고 변화했었던 자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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