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의 나이에 만났던 초코. 갈색 털을 가졌다는 이유로 초코라는 흔해빠지고 성의 없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 마트에 장보러 갔다가 언니들이 떼써서 사온 손바닥만했던 강아지는 처음에는 나와 함께 자라나며 친구로, 동생으로 나의 옆에 있어주었던 소중한 파트너가 되었다. 나의 가장 끝에 있는 기억부터 존재했으니 우리는 생의 시작을 함께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 아이는 조건 없는 사랑의 산물이었다. 상대가 나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어도 나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말 못하는 그 작은 짐승이 내게 알려준 책임감과 헌신은 그 누구에게서도 내가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나의 생명을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관심과, 끈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던가.
우습지만, 이렇게 장황하게 떠들어대는 사랑의 크기에 비해 정작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지킬 능력이 없었다. 능력 없는 사람에게 찾아온 사랑이란 끔찍하리만치 잔인한 것이었다.
부모님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부모님은 자기 자식들조차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는데 개 한마리는 오죽했겠는가. 모두의 관심이 사라진 차가운 집을 매일 지키고 있던 건 초코와 나였다.
데려와놓고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배웠다. 처음에는 무책임한 사람들의 반열에 우리 가족이 올라와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싫어 그 그축에 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챙기고 살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이고, 산책을 나가고, 학원에 가야할 때에는 생각없이 데리고 갔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행동을 받아주던 학원 선생님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 애는 집에서는 활달하다가도 조용히 해야하는 곳에선 얌전히 누워있을 줄 알았다. 용돈을 모아 병원에 다니고 미용을 맡겼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짐승이였지만, 그 아이가 나를 특별하게 여기고 의지하는 것을 느꼈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온몸을 내던지는 그 작은 생명체가 내게는 너무도 간절했다. 내게 사랑을 줄 대상이 필요했던 건지 내가 사랑을 줄 대상이 필요했던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정체불명의 간절함을 느꼈다.
그 아이를 끌어안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을 다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돈도 힘도 없는 중학생의 최선이란 정말 무가치하고 보잘 것 없는 일이었다.
결국 부모님이 갈라서면서 할머니네 집에 살게 되었을 때 초코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좁아터진 조부모님의 아파트에 네명이 우르르 얹혀살게 된 마당에 어떻게 개까지 데리고 가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어서 어린아이처럼 떼를 쓸 수도 없었다. 떼는 고사하고 그래도...라는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마음 속에서는 분노와 원망이 들끓는데 대상이 없었다.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 더 최악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상 없는 화살은 결국 자신을 향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의 처분을 고민하던 어느날, 저녁에 갑자기 힘 없이 늘어진 모습을 보았다. 불안한 붉은 눈빛과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자세.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모습. 분명히 평소같지 않은데 가족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피곤한가보지,라 말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곧바로 초코를 데리고 뛰쳐나가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푹푹 찌는 8월의 한여름밤이었다.
절망스럽게도 네 곳의 동물병원 중 어느 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어두운 밤, 홈플러스 앞의 정류장에 앉아있던 의자의 까슬거림이, 이마에서, 등에서, 눈에서 물이 죽죽 흘러내리던 감각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청해서 24시 동물병원에 갔지만 그곳에 있는건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 수의사 뿐이었다. 한참을 어벙하게 있다가 왜 그런지 모르겠으니 모든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최소한 50만원은 나올 것이라는 말에 엄마는 망설이다가 의사가 이상한 것 같으니 날이 밝는대로 노원구에 있는 큰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할머니네 집도, 돈도, 수의사도, 밤이라는 시간도, 나의 무능함도 모두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집에 돌아와 초코를 거실에 눕혀놓고 알람을 찾으러 방에 들어갔다. 그 잠깐 사이에도 그 애는 비명을 질러대며 날 찾았다. 별명이 영감탱이일 정도로 얌전하던 초코가 처음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내 뒤를 향해 우는 모습에서 오는 이질감은 무척이나 공포스럽고 이상했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미칠듯한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애써 부정했다. 마냥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품 속으로 파고드는 그 아이를 안으며 빨리 아침이 오기를 빌었다. 아침이 오기도 전에 결국 죽었지만 말이다. 그 애는 자기가 사라져야 하는 상황에 딱 적절하게 죽어버리고 말았다. 숨이 막혔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자 느껴지는 딱딱함과 차가움에 비명을 질렀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말했다. 그 애가 뭔가를 느꼈나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할머니네로 가기 전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냐고. 제발 그만 말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초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특한 그 애가 느꼈을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애가 왜 갑자기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벌벌 떨던 다리와 충혈된 그 눈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그 몸뚱이를 상기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건강검진을 할 수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집에 조금 더 일찍 들어갔더라면 큰 병원의 문이 닫기전에 가볼 수 있지 않았을까. 50만원이 있었으면 구할 수 있었을까. 후회와 자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더 우스웠던 것은 과거로 시간을 돌려도 16살인 나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나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나약한지 지독하게 깨달았다. 고작 이런 개 하나를 지킬 수도 없는 인생을 왜 살아야하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5년간 초코가 나오는 꿈조차 꾸지 못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어떤 모습이든 그 애가 꿈에 나오면 나는 정말 뛰어내렸을지도 모르니까.
21살 5월에 처음으로 초코가 꿈에 나왔다. 이사가기 전 옛날 집의 욕조에서 나는 눈을 감고 늘어진 그 애를 조심스럽게 씻기고 있었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행복한 기억이 많았던 그 집은 예전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엄마는 죽은 사람을 씻기는 건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거라고 했다.
누구 마음대로?
난 아직도 그 작은 개를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죽어버리려는 충동에 휩싸이고 끔찍해 미치겠는데 누구 마음대로 떠나보낸다는 건지 웃기지도 않았다. 여전히 방 안의 상자에는 초코의 털이 한 웅큼 있었다. 복제 기술이 더 보편화되고 상용화되면,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꼭 너를 그대로 내 곁에 두겠다는 집념으로 잘라놨던 털이었다. 나는 조금도 그 애를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꿈을 꾼 그 날 저녁에 과외를 하고 돌아오니 집에 하얀 새끼강아지가 있었다. 언니들이 몇달 전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나와 엄마의 반대에도 막무가내로 데려온 것이었다.
나는 아직 그 애를 보낼 준비가 안됐는데 이제는 또 세상이 그 애를 이만 보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왔다. 왜 초코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죽음까지 단 한번도 내 뜻대로 되지 못했던 것도 모자라 죽고나서까지도 내 의지대로 할 수가 없는 걸까.
방에 있는 새로운 흰색 강아지를 보며 나는 다시 무너졌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있어야만 했던 초코와 다르게 금이는 모든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털이 갈색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초코가 된 그 아이와는 다르게, 금처럼 귀하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담아 금이가 됐다. 50만원이 없어 죽어야 했던 그 애와 달리 200만원짜리 다리수술도 병명을 진단받은 그 날 예약이 잡혔고, 작은 기침만 해도 언니들은 법석을 떨며 병원에 데려갔다. 돈을 벌어보니 50만원과 200만원은 모두 푼돈이었다. 이 쉬운 것들을 그 애는 왜 하나도 받지 못했나.
그렇다고 금이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금이도 차근차근 나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나갔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금이를 키우면서 더 이상 초코를 떠올려도 괴롭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현재 책임지고 있는 생명이 있는 이상, 이전의 이별에 계속 얽매여있는 것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다. 금이는 금이만의 사랑과 유대가 있었다.
오히려 그 때의 초코보다도 금이를 더 사랑한다. 그 아이와 함께할 때의 나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었기에 줄 수 있는 사랑의 크기조차 지금보다 작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초코는 첫사랑으로 남았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았고, 인생에서 겪은 상실 중 가장 아팠고, 잊혀짐과 애틋함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존재. 어렸고 미숙했고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내가 마주했던 나의 첫 사랑. 그 아이가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던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너무나 무능했고, 그래서 지켜줄 수 없었던 그런 첫사랑.
첫사랑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에 걸맞게 나의 첫사랑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