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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Nov 14. 2022

환절기

  어쩐지 갑자기 날이 따뜻해진다 싶더니 어제부터 굉장한 추위가 밀려들어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디건을 입어도 괜찮을 만큼 공기가 따뜻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차가워질 수가 있나. 얼음 냄새를 한껏 풍기는 오늘의 아침 공기를 들이쉬니 그동안의 나의 혹독했던 겨울들이 기억 밑바닥에서 서서히 떠오른다.


이 시기에는 항상 익숙하고, 시리고, 불안한 냄새가 난다. 이제야 내 삶에도 온기가 찾아오나 싶으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몰아쳤던 순간들은 공교롭게도 겨울에 있었기에, 학습된 짐승처럼 다가오는 겨울의 첫 공기에 자연히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것이다.


“엄마, 나는 종종 겨울에 수능 냄새를 맡아. 그러면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나. “

 ”트라우마네. “

“트라우마? 아냐, 그거랑은 느낌이 다른데...”


엄마는 트라우마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감각이다. 굉장히 애틋하고 그리운, 가장 아팠던 20년도의 냄새.




20살이 시작되던 겨울, 긴장감과 불안감에 자꾸만 나오는 구역감을 참아가며 본 수능은 최악의 성적이 나왔다. 제주도에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잠겨 죽는 생각을 했다. 뼈를 뚫는 이 한기와 내 키만큼 올라오는 강한 파도라면 나를 금방 죽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시 실패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내 상황은 흔하지 않았다. 나는 남들처럼 적당한 종합반에 들어가 재수할 형편도 되지 않았고, 나의 가족들은 재수생이라는 짐을 더 추가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배가 불렀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실패도 일어날 기회가 있어야 하는 건데, 아무것도 없으면서 실패를 하다니.


분명 따뜻한 봄날이 왔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패작인 것도 역한데 주제 파악조차 못하는 실패작이 됐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왜 내가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들은 다 나를 떠나는 걸까.


본격적인 재수 시작도 전에 불법 촬영을 당해 정신과와 경찰서, 검찰청을 오가게 됐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신분이라 심리상담 지원을 받게 됐다. 정신과로 보내졌다. 필요없다고 말해도 그냥 병원으로 보내졌다. 법이 그렇다고 한다.


불법 촬영 건으로 오게 되긴 했지만 그 일 자체에는 사실 별로 감흥이 없었기에 상담사와는 재수와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다.


“상담도, 약도 모두 지원될 거예요. A 씨는 괜찮아질 때까지 얼마든지 이곳에 오시면 돼요. 치료에 A 씨가 부담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


내가 원하는 만큼 있어도 된다는 게, 아무런 부담을 내게 지우지 않는다는 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아픈 것조차 부담이고 짐이고 민폐였기에. 누군가 ‘다 해줄 테니 스스로를 돌보는데 집중해라’라고 말해주는 건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었다.



상담사는 차분해 보이는 인상에 목소리는 나긋나긋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질문들은 항상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내가 외면하는 것들만 쏙쏙 골라 관통하는 질문들로 나를 당황시켰다.




“A 씨, A 씨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A 씨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A 씨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


“... “


“쉽게 말하자면, A 씨가 혐오하는 A 씨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뜻이에요.”


상담사는 계속 나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잘 모르겠어서 생각나는 대로 답했다. 모순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성격이 나빠요, 정이 많아요.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 성공하고 싶어요. 사랑하고 싶어요. 도망가고 싶어요, 맞서고 싶어요.




나는 끝없이 나를 혐오하며 살아왔다. 혐오는 강한 원동력이 된다. 물론 타인을 향한 혐오는 혐오를 낳고, 사회적으로도 허락되지 않는 일이기에 권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것은 완전히 허락된 일이었다.


나를 혐오하면 나는 그 혐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꽤나 쓸모가 있다. 그렇게 계속  혐오스러운 나와 정반대의 모습을 꾸며내고 그건 제법 그럴듯해 보이게 써먹을 수 있다. 


어느새 나는 강인하고, 똑 부러지고, 똑똑하고, 당찬 사람으로 남들에게 보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는 나만 알고 있었고, 나의 원동력이 고작 혐오라는 것 또한 나만 아는 사실이었다.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열심히 숨겨왔던 나의 혐오스러운 본질을 밖으로 토해내면, 결국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될까 봐 무서웠다. 한번 인정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 누구에게든 복수하지 않고 다 잊고 싶어요. 그냥 다 잊고 앞으로의 미래에 집중하고 싶어요. 아픈 기억을 상기하는 게 두려워요. 서연고가 아닌 적당한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어요. 여전히 사람을 믿고 사랑을 하고 싶어요. 타인에게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나요?”


“너무 나약해요. 그런 일을 겪고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어리 석어 보여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사람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요.. “


“오히려 저는 A 씨가 상처를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


“너무 이상적인 말 같은데요.”


“상담사로서 상담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지만, 상담 경험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A 씨 같은 사람은 처음 봐요. 굉장히 새롭고, 제가 본 어떤 사람보다도 강해요. 보통의 사람들은 절망의 상황에서 현재 본인의 마음이 어떤지 자각조차 하지 못해요. 자신에 대해 알려달라고 해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곤 하죠. 정말 대부분이 그래요. 하지만 A 씨는 자기 자신과 마음을 아주 정확히 꿰뚫고 있네요. “


“그런게 무슨 대체 의미가 있나요?”


“마음이 어떤지를 정확히 알면,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도 알게 되니까요. A씨는 분명 알고 있을 거예요. “




딱 한 달만 모든 것에 “그럴 수 있지”라며 받아들여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 들어도 거부하지 말고 한번 마주해보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제는 만나는 사람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었기에 내가 나약한 모습을 보여도 알 사람이 없으니 괜찮지 않냐고 했다. 어떻게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어느 날은 눈물이 났다. 굳이 멈추려 하지 않고 며칠이고 울었다. 역 앞에 있는 걸인이 안타까웠다. 지갑에 있던 동전을 털어주었다. 공부하다가 롤이 하고 싶어져서 학원 관리자의 눈을 피해 뛰쳐나왔다. 이따금씩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 때면 굳이 머릿속에서 떨치려 하지도 않고 곱씹지도 않으면서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답지 않은 행동들에 멈칫하는 순간에는 상담사 선생님이 그래도 된댔어, 라며 자기합리화를 실컷 해댔다. 거지 같은 기분도, 행복한 감정도,  우울함도, 나약한 도피 심리도, 다 온전한 나의 것들이니 찾아오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나를 탐구하다 보니 새삼 ‘내가 만든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에는 굉장한 괴리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외면해왔던가.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꽤나 정이 많고, 소심하고, 약한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내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확히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실을 마주하고 응어리를 풀어내기엔 나는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었고 맞서야 할 사람과 지켜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나 자신을 살필 틈이 없었다. 일단 당장 나아가기 위해 공격적이고 차가운 모습을 꾸며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도망치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니 오히려 맞설 각오가 섰다. 용서하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니 더 이상 그 일을 떠올릴 때 괴롭지 않았다. 공부가 하기 싫다는 것을 인정하니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모순적이었다. 내 자신이 한심한 꼴이 될까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되려 될대로 되라며 체념하니 성적도 미친 듯이 오르고 불안증도 사라졌다.


재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상처를 무시하며 뛰어왔는데, 웃기게도 재수라는 쉼표에서 나는 그간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너무 추웠고 찬란했던 겨울을 그렇게 지나왔다. 어느새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날의 감각들과 생각들이 생생히 남아있다. 추위가 찾아오는 환절기였지만 동시에 따뜻한 바람이 새로 불어오기도 했던 환절기였다.


22살의 겨울이 새로 찾아오고 있다. 2년 전의 차가움이 공기에 섞여 들어온다. 그 냄새에 가슴이 뛰고, 몸이 떨리는 감각이 살아난다. 그 떨림이, 애틋하고 치열했던 그날의 내가 이제는 다 괜찮아졌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그 시간도 이겨냈는데 이제 못 이겨낼 게 뭐가 있겠나 하며 가던 길을 마저 가는 것이다. 추우니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목 소매에 파묻고, 그냥 그렇게.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다시 환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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