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수제비

기억이 머문 한 그릇

by 담는그릇

엄마는 피아노 학원을 하셨다. 그래서 평일 저녁 식탁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잘 오르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어릴 때의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싫었다.

언제였을까.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던 날,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셨다. 그때만 해도 내가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없던 때라 수제비를 해주신다고 했을 때 괜히 대단하게 느껴졌다. 왠지 준비가 많이 필요할 것 같고, 손도 많이 갈 것 같아서.

할머니는 물에 멸치를 넣어 국물을 내고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그리고는 막 반죽을 만들어 숟가락으로 툭, 툭, 국물 속에 떨어뜨렸다. 그게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할 것 없는 과정인데, 그날의 수제비는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아마도 ‘나를 위해’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주셨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방에 가만히 계시다가 수제비가 다 끓자 함께 나와 드시던 외할아버지도 생각난다. 이미 몇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날만큼은 늘 그 자리에 계신 것처럼 떠오른다.

지금 외할머니는 치매로 기억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계신다.
그래도 혹시, 김치수제비는 어떻게 끓이냐고 물어보면 열아홉에 시집와 스무 살 무렵부터 끓였을 그 레시피가 깊은 기억 속 어딘가에는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유난히 추운 겨울날이다. 그래서 문득 묵은지로 김치수제비를 끓이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열한 살과 아홉 살인 우리 딸들은 좋아할까.
아마 남편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웃겠지.

먹는 데 진심이라면서.


내가 끓인 김치수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