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학이라서요
이민병 걸린 남편의 병을 좀 고쳐보고자, 내 남편이 저렇게도 한번 살아보자 애원하는데 안 좋기만 해 봐라! 하는 생각에 따라온 뉴질랜드. 이곳에서 얼레벌레 살다 보니 어찌저찌 살아진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혼자 애 둘 키우며 살 줄 몰랐다.
해외살이 준비부터 이민생활 1년까지의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기록하고자 랩탑을 열었던 순간부터 머릿속에 글감이 가득 차 어떻게 풀어낼까 매일이 재밌다. 간식을 만들면서도 이번글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까, 저녁을 먹으면서는 제목은 이걸로 할까, 저걸로 할까.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서둘러 커피 한잔을 내려 식탁에 앉아 그간의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작업에 열중한다. 이렇게 신날줄 알았더라면 직작에 한번 해볼걸 이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라도 글 쓰는 작업이 나의 활력소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물론 나도 해외살이 블로그들처럼 압도적인 뉴질랜드의 자연 속에 머물며 눈부시게 아름답고 웅장한 환경을 소개하고 많은 정보도 줄 수 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보다 브런치>라는 지난번 글에서처럼 보여주기 식이 아닌 이민에 관한 실제 경험담을 쓰다 보니 뉴질랜드 대자연에서 멋진 환경예찬이 아닌 그 속에 살고 있는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한 글이 주가 되었다.
가볍게 쓰고자 했던 내 이야기들을 이민과 관련짓다 보니 결혼생활을 엮어오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시가와의 갈등, 며느리의 이야기도 솔직히 적게 되었다. 브런치는 나만의 대나무숲이 되어 내가 키보드에 지르는 나의 외침을 감싸 안았고 그저 한 여성이 조용히 적어내는 글에 공감과 이해를 해주시는 독자분들도 늘었다. 내 글을 읽는 분들이 늘어날수록 나의 과거가, 나의 선택이 공감을 받기도 했지만 질타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어쩔 도리가 없다. 과거를 쓸 뿐 과거를 재 선택 할 수 없는 노릇이니. 그래서 머뭇거렸다. 과연 이 글이, 이 내용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고민하고 쓸 내용과 뺄 내용을 다시 한번 선택한다. 글을 쓰는 이와 글을 보는 이가 나뉘어 잘했다 못했다 이분법적 평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댓글의 반응도 위로가 되거나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나는 분명 홀가분해지고 있다. 말해봤자 함께 속상하고 아파할 일. 그래서 그동안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고 묻어두었던 일들을 가슴에서, 머리에서 끄집어내어 낮이고 밤이고 적다 보니 내 마음은 날아갈 듯 홀가분해지고 있지만 내 손목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을 잠시 다녀오느라 글쓰기를 잠시 멈췄을 땐 아프지 않던 손목이 뉴질랜드로 돌아와 이민생활1년기를 브런치북으로 엮어내며 자주 시큰거리고 욱신 거린다.
그래서 아이들 방학과 더불어 내 손목이 쉬어갈 타이밍을 만들고 있다. 안 쓰면 좋아지겠지 싶은 내 손목은 글을 멈춘다고 나아지는 것 같진 않다. 현재 나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 부모로 함께 아이 둘을 양육할 때 보다 손목의 사용은 두 배가 더 많아지니 글을 멈추는 게 능사는 아닐 터. 아무래도 내 손목의 쉬는 타이밍은 아이들의 학기가 시작되면 찾기로 하고 글쓰기는 아이들이 잠들면 한 줄씩 차곡차곡 쓰기로 한다.
나는 지금 현재를 살지만 과거의 일들을 글로 쓴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다. 글에서만큼은 솔직하도록,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가끔은 커피 한잔을 옆에 두고 쓰고, 가끔은 와인 한잔을 옆에 두고 쓴다. 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재밌어하고 슬퍼도 한다. 발행 전에도 수십 번은 읽으며 찾아내려 한 오타와 잘못된 띄어쓰기가 브런치 북을 발행하고 발견되면 이불킥을 하고 수정할 수도 없는 글에 전전긍긍한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찾은 나의 친정, 나의 대나무 숲에 브런치적 허용을 기대하며 허술한 모습도 나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리고자 이렇게 또 한 줄 적게 된다.
아이들 방학이 끝나면 다시 키보드에서 시큰거리는 손목을 휘날려볼게요.
지금은 아이들 방학이라서요.
잠시만 ALL STOP 하겠습니다.
march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