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ch Aug 10. 2023

한 여름밤의 꿈

한국으로 여행 갔지만 지금 뉴질랜드에 있습니다?

4년 6개월 전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일일이 화장실 수발을 들게 하며 엄마아빠의 잠 한숨 못 자게 했던 꼬맹이 시절을 벗어난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 자신들의 짐가방을 스스로 꾸렸다. 아이들이 챙긴 것들을 보니 참 야무지다. 한국에 한 달 넘게 체류하며 서로를 궁금해할 학교 선생님,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각자의 노트북을 챙겼고 애착인형과 비행기에서 심심할 때 그림을 그리고 책을 볼 것이라는 계획으로 가방을 채웠다. 아이들은 스스로 챙긴 가방을 각자 어깨에 둘러맸고 이는 한국에 도착해서까지 계속됐다. 물론 비행기에서 화장실 수발은 각오했지만 이마저도 스스로 했고 심지어 비행 중에 승무원분들께 스낵과 음료를 부탁하는 일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내 나라에 도착했다는 안정감이 나를 편하게 한다. 굳이 말하는 이를 쳐다보지 않고도 저 멀리서부터 쏙쏙 들리는 모국어, 별다른 지체 없이 시간에 맞춰 돌아가는 수화물 찾기까지 설레고 흥분되는 시작이다.


늦은 밤에 친정에 도착해 따뜻한 엄마 밥을 먹으니 괜스레 찡하지만 그 모습마저도 들키기 싫은 K-장녀는 뉴질랜드에서 오는 비행시간이 길었어도 아이들이 엄마아빠 도움 없이 스스로 한 일들이 많아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며 친정부모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한국 도착 다음날부터 우리 가족의 에너지 방출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11살, 9살 남매의 요구사항은 언제나 달랐고 딸이 하고 싶은 것과 아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일치하지 못했을 때는 내 동생들(이모와 삼촌)이 따로 움직이며 조카의 수발을 들었다. 우리가 떠나올 때 20대의 팔팔함을 무기로 쌩쌩 날아다니던 이모삼촌은 어느새 서른을 넘기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모든 체력을 쏟아부었다. 조카와 놀고 난 다음날에는 한의원으로 달려갔고 허리에 침을 맞아가며 또 다른 이벤트를 생각했다. 키즈카페에 가서 두 시간만 놀아도 충분히 즐거워했던 조카들은 이제 에버랜드와 롯데월드에서 12시간 내내 놀며 티익스프레스가 재밌다고 말하는 체력 좋은 10대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매주 조카들을 맞이하다 떨어져 있는 동안 조카들은 어느새 훌쩍 커있었고 더 크기 전에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며 놀이동산, 테마카페, 워터파크와 쇼핑몰 등을 데리고 다녔다. 늘 같이 놀러만 다니던 이모와 삼촌이 일하고 있는 곳도 방문해 재밌는 직업체험도 하며 뉴질랜드의 친구들과 선생님께 이야기할 주제를 하나씩 늘려나갔다.


우리는 친정과 시가에 번갈아가며 지냈다. 양가는 차로 30분도 안 되는 거리로 멀진 않았지만 며칠씩 머물다 옮기는 일이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 더구나 어둠이 찾아와도 환하게 밝혀진 대한민국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스케줄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다 보니 둘째는 물갈이로 얼굴의 두드러기가 시작됐고 첫째의 열감기가 이어졌다. 아이들이 나아지니 남편과 내가 병이 났다. 우리 가족 모두 피로누적과 과로가 원인이 됐다.


하루 이틀의 휴식으로 건전지를 갈아 끼운 우리는 다시 달렸다. 뉴질랜드에서 넷플렉스 코리아넘버원 프로그램을 보며 갯벌체험을 해고보 싶다 말했던 아이들을 위해 뙤약볕의 갯벌에서 하염없이 조개를 캤고, 딸이 좋아하는 낙지를 맛봤으며 시골에서 94세의 왕할머니와 식구들을 만나 뵈었고 강원도와 제주도 여행도 했다.


강원도 여행에서 돌탑을 쌓고 작은 두 손 모아 소원을 비는 손주들을 바라보시던 시부모님의 얼굴이 기억난다. "예쁘다. 멋있다. 수고했다. 힘들었겠다. 보고 싶었다."그런 말씀 일절 내뱉어보신 적 없는 어른들, 이번 만남에서도 그런 말들은 당연히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눈빛만으로 얼마나 아들내외와 손주들을 그리워하셨는지 느껴진다. 드시지도 않는 블랙커피가 시가 식탁에 놓여있는 것, 맥주 한잔 못하던 며느리가 요즘은 한잔씩 즐길 수 있다는 아들이 스쳐 말했던 말로 냉장고에 맥주와 막걸리를 채워놓으신 것, 저녁만 되면 시원한 맥주 한 캔 식탁에 올려놓으시는 것만으로도 '며느리를 위해 준비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말 대신 식탁에 마음을 놓아둔 시부모님. 아들내외와 손주들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을 이젠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낀다.


팬더믹으로 하늘길이 막혀 오가지 못해 그리웠던 가족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언제 헤어져 살았나, 우리가 언제 원망을 하고 살았나 싶게 서로에 대한 부재의 시간은 우리를 화목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못 가본 곳을 여행하며 지내리라 생각했던 우리의 5주는, 양가 식구의 그리움을 덜고 반가움을 채우는 시간으로 지나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한여름밤의 꿈같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다시 반갑게 만나리라 다짐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 손주들 옆에 끼고 볼이 닳도록 만지고 부비며 눈만 마주치면 먹거리를 내오시는 친정부모님 덕에 우리는 몸과 마음도 한껏 부풀어 뉴질랜드로 떠났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지며 공항 가는 길에 펑펑 울던 딸에게 나는 말했다.

"헤어지는 지금이 슬프다 해도 GOOD bye를 해야 다시 만났을 때 반가운 hello를 할 수 있는 거야"

11살 아이는 이해할까?


속으로 말했다.

'너는 네 옆에 엄마인 내가 있잖아.

내가 엄마랑 떨어지는 건데 내가 더 울고 싶단다.

그래, 마흔 살 네 엄마도 언제나 헤어짐은 슬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갑니다, 한국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