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고 일주일째 짐정리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대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젊은 사람들이 이사왔다 캐서 우리가 보러 왔재.” 열린 문안으로 들어서는 낯선 어르신들의 목소리였다. 이사하고 처음 방문하는 동네 할머니들이시다.
“아이고, 새댁이네.” 결혼한 지 꽤 됐는데 오랫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어려보이는 호칭이라 기분이 좋았다. 두루마리 휴지를 사오셨다. 마을 어르신들 전체가 오신 것 같았다. 결혼하고 열 번 넘게 이사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관심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시골에서 대문을 열어 놓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라는 암호 같은 건가 보다. 그래서 불쑥 자주 들르시는 분도, 젊은 새댁이 신경 쓸까봐 문 앞에 먹거리를 살짝 갖다 놓으시는 분도 계신다. 처음엔 그게 힘들어서 문을 닫고 잠수를 타 보기도 했다.
몸이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며칠째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새댁이 걱정되었는지 만날 때마다 괜찮냐고 물으셨다. 그 후로 한분 한분 얼굴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사실 할머니들 모습이 다 비슷비슷해서 좀처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입구집, 포도밭 집, 개 있는 집, 키작고 귀여운 할머니, 대나무밭 옆집 할머니 등등 머리속에 인식표를 붙여 보았다. 할머니들은 대부분 이름대신 출신 고향이 호칭이 된다. 예를 들면 ‘안동댁’ 같은 식이다. 요즘 우리는 세대는 ‘누구 엄마’, ‘누구 씨’라고 하는 셈인 것 같다. 다들 자녀들이 출가하고 부부나 홀로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니 자녀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단골 주제가 자녀 이야기이다.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어느 대학 나와서 어디 취직해서 뭘 하고...” 결혼 전 친정엄마도 동네 아주머니들과 자식들 얘기하다가 들키고는 하셨다. 난 나의 가족 이야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좀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내가 할머니들과 얘기해보니 딱히 이야기할 주제와 관심이 그것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자나깨나 자식 걱정 또는 자식에 대한 자부심 그것이 인생의 황혼을 사는 할머니들의 유일한 낙임을 조금 이해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다 장사를 가시고 할머니가 늘 집에 계셨다. 손주들 밥도 챙겨주시고, 집안일도 하시고 늘 바빴던 모습이 기억난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할머니는 부업을 하고 계셨는데 그 옆에서 말동무가 돼 드렸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들은 것, 책 이야기, 가끔 친구들과 나눈 웃긴 농담도 하곤 했다. 내가 쫑알대며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 할머니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도 할머니도 ‘참 외로웠구나’ 생각이 든다. 그 꼬맹이 손주랑 무슨 말이 통한다고. 유년시절 늘 한 자리에서 나를 맞아 주신 그 존재만으로 할머니께 감사드린다.
그 할머니를 닮은 분들이 이곳에 많이 계신다. 그래서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할머니라 하기엔 나의 엄마 또래니까, 친정 엄마라고 해 두자. 어쨌든 내게 유일한 말벗이 되는 동네 친구님이 많이 생긴 건 좋은 일이다. 무엇을 여쭤 볼 때면 “내가 뭐 아는 게 있나” 하시면서도 말 속엔 삶의 지혜와 위트가 있다. 단지 조금 덜 배우셨을 뿐, 평생을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닦으신 내공을 무시할 수 없다.
쌀쌀한 2월 말, 평소보다 포근하게 느껴진 밤공기. 그건 아마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주는 따뜻한 마음 ‘인심’이었다. 호칭이 주는 정감, 경계 없는 사람의 거리.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