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농사 - 들깨밭 >남편의 두 번째 소원은 시골에서 농사짓기이다. 원래 직업은 따로 있으나 마냥 꿈 꾸던 농사를 실행에 옮겨 보는 것은 남편에게 가슴 벅찬 일이다. 비록 몸 쓰는 일이 익숙지 않아 몸살을 달고 있지만 늘 괜찮다고 한다. 아마도 힘들면 쉬라고 할까봐 겁내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어깨너머로 농사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주로 책이나 인터넷을 보고 연구하는 것 같다. 1년은 이래저래 배운대로 해보다가 잘 안 맞았는지 올해는 동네 어르신들이 하시는 때를 곁눈질해서 눈치껏 하고 있다. 그것이 이곳 형편에 더 잘 맞기 때문이다. 올 농사는 작년보다 좀 나아졌다.
봄이면 밭 갈고 씨뿌리고, 여름 가뭄엔 물 주느라 고단하다. 가을이 되면 수확하고 갈무리하느라 하루해가 짧다. 그나마 겨울엔 책이라도 한 자 볼 여유가 생긴다.
예로부터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 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남편은 묵묵히 해내고 있다. 올해 고추는 최대치의 수고가 들어갔다. 무농약을 고수하며 막걸리와 쇠비름을 이용해 자연 액비도 만들었다. 시간 될 때마다 큰 통을 짊어지고 밭에 나갔다. 성실하게 하니 열매도 잘 맺혔다.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참 옳은 말이다. 병도 조금밖에 들지 않아 괜찮았지만 말리는 과정에서 서툰 실수로 인해 손실을 보았다. 처음이니까 배우는 자세로 하자며 아쉬운 마음을 다독였다.
여러 작물을 심었는데 수십 가지가 넘는다. 쌀과 고기를 제외한 자급자족도 나름 되었다. 수입을 위해 짓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스스로 지어보는 것,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남편의 이상이다.
그런 나눔들 끝엔 예기치 않는 선물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자연스런 물물교환 아닐까.
수월하게 농사짓는 방법은 없는 걸까. 잔머리를 써 봐도 역시 땀 흘린 만큼 거두는 것이 이치인가 보다. 온통 밭에 있는 먹거리 돌보느라 쉴 틈이 없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야속할 때도 있다.
도시사람이 귀농귀촌하면 티비에서 비치는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부지런한 개미가 되어 가는 중이다. 예전처럼 여유시간에 아이들과 보내는 것이 점점 소원해지고 있으나 농사에 익숙해지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가족 모두가 함께 소통하며 사는 시골살이가 되면 좋겠다.
남편은 동네 공식 ‘젊은 사람’이다. 70대가 대부분인 요즘 시골에선 40대의 젊은이는 드물다. 나이 드신 어른들 외엔 젊은 일손이 없다. 예전엔 서로 품앗이로 도왔지만 모두가 70대를 훌쩍 넘긴 지금은 누가 누구를 도와주고 말고 할 게 없다. 그래서 큰 일손이 필요한 계절엔 도시에서 일할 사람을 돈 주고 불러야 한다.
혼자 사는 할머니 옆집엔 빈 집터가 있다. 말이 집터이지 대나무가 온통 점령하고 집은 무너졌다. 대나무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할머니네 마당을 자꾸 침범해서 힘들다고 하셨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그 모습을 보고 힘을 냈다.
농사철이 되면 이래저래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동네 젊은 청년 축에 속하는 남편은 언제나 준비된 일꾼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묵묵히 소처럼 일하는 남편이 요즘 사람 같지 않다며 대견해 하신다. 남편은 할머니들의 칭찬과 맛있는 새참이면 늘 만족하는 눈치다. 그 성실함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지만 때로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동네 어르신들을 돕는 건 남편이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그 후로 어르신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된 게 사실이다. 좋아서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있을까. 자녀들은 출가하고 덩그러니 집을 지키시고 계시니, 적적하시던 차에 그이를 보면 자식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