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 너머 보이는 복숭아 밭 > 우리집 담장 너머로 나지막한 언덕이 보인다. 그곳엔 키 작은 복숭아 과수원이 있다. 봄이 되면 분홍빛 꽃망울을 터트리며 축제를 벌인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보았다. 좋은 것들을 같이 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일종에 ‘잘지내고 있다’는 편지 같은 것이다.
도시 사는 친구들과 사진 한 장, 글 몇 줄로 주고받는 소식들은 그들과 나 사이를 잇는 가느다란 끈이 되고 있다. 시골에 이사 오면서 생긴 내 방식의 소통법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유난히 눈에 들어온 집 앞 복숭아나무들. 낯익은 풍경. 그것은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집을 떠올리게 했다.
몇 해 전 태어난 고향을 방문했다. 7살 때 부모님 따라 도시로 나온 후 처음 가본 것이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다시 찾아갈 기회도 없었다.
멀미가 날 정도로 산길을 돌고 돌아 찾아간 두메산골. 작은 산 아래 여러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골마을, 여기저기 복숭아꽃이 피어 있었다. ‘참 소박하고 예쁘구나.’ 오랫동안 꿈속에서 희미하게 보았던 고향 마을 풍경은 따뜻했다. 실제로 보니 마치 나의 정체성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시절 떠나온 고향과 비슷한 이곳에 다시 뿌리를 내릴 줄 몰랐다.
아직은 시골생활이 늘 즐거운 것도 아니고 복잡한 도시의 삶에 익숙한 내게 단순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시골의 삶은 불편할 때도 많다. 나 자신이 시골 출신이라고 인식하고 산적도 없다. 다만 시골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조금은 시골 정서에 수월이 동화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결국 오랜 시간을 걸려 다시 제자리로 온 것뿐이다.
사실 대부분 시골과 연관성이 전혀 없다면 애써 이곳에 살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주말농장, 도시공원, 가까이 있는 산과 계곡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자연과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골 살면서 때때로 익숙한 정서를 마주할 때면 할머니와 부모님이 생각난다. 할 줄 아는 게 농사밖에 없던 시골 정착민들이 자식들 키우느라 낯선 도시 어딘가를 떠돌면서 도시 유목민이 되어야 했던 고단했던 삶. 비록 몸은 도시에 살지만 그 뿌리가 시골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으셨던 것 같다.
결혼 전 마지막 친정집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한옥이었다. 그곳엔 오동나무, 앵두나무가 있었고 마당 안에는 작은 텃밭도 있었다. 부모님은 그곳에 갖가지 채소와 꽃을 심으셨다. 10년을 사는 동안 우리집은 마치 도시속의 작은 시골같은 풍경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몸에 밴 시골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집이었다. 낡은 집이어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고향집 같은 아늑함이 있었다.
이사온 후 날씨가 조금씩 풀리면서 묵혀둔 텃밭과 골목 꽃밭을 정돈했다. 땅이 딱딱해서 무엇을 심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사람 사는 집이 하도 우중충해 서툰 손을 움직여 보았다. 회색빛으로 얼룩진 담벼락은 흰색을, 녹이 쓴 대문엔 쨍한 녹색을 칠했다. 이것저것 다듬다보니 왠지 집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눈부시게 밝은 흰색 벽이 튀어 보인다. 여느 집의 회색 시멘트벽들과 대조되었다. 서너 번의 계절이 지나면 조금 누그러진 빛깔이 될 것이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었던 땅도 녹아지고 메마른 풍경에도 색이 입혀진다.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올 때 가졌던 시골에 대한 작은 꿈도 언젠가 씨를 심고 싹을 틔울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또 다시 희망이 새록새록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