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억하는 맛이 있다

by I rene

마당 텃밭에 열무를 심었다. 열무의 떡잎이 날 땐 하트 모양이 되는데, 꼭 ‘사랑해’ 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열무가 쏘아주는 하트 하나를 보며 혼자 웃었다. 비가 오고 몇 주가 지나 김치를 해 먹을 정도로 쑥쑥 컸다.


열무를 보니 엄마가 자주해주던 시원한 열무김치가 생각났다. 엄마는 김치를 한가득 해놓고 맛있게 됐다며 전화를 하곤 했다. 시집간 딸들이 보고 싶다는 암시였다.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끝내는 정없는 딸내미는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고 바쁘다며 나중에 가겠다고 둘러대곤 했다. 그 엄마의 마음이 이제야 와 닿는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어린시절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부재중’이었다. 가진 것 없이 도시로 이사 온 후, 형편이 어려워서 엄마는 시장 난전에서 채소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새벽밥 먹고 나가면 밤이 돼서야 집에 들어오시곤 했다. 학창시절 내내 엄마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다른 친구들이 엄마와 손잡고 길을 걷거나, 옷을 사러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모습을 볼 땐 늘 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곤 했다. 하루 종일 ‘엄마’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엄마가 왜 바쁜지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난 20대가 되어 사회생활을 했고, 엄마와 마주칠 기회는 더 없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집에 있게 됐는데 여느집 딸들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도 못했고 심지어 낯설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릴적 섭섭한 마음이 엄마의 존재를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흔두 살에 둘째 딸을 임신하고 입덧이 심하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다가도 친정에 가서 엄마 밥을 먹으면 그렇게 잘 넘어 갈 수가 없었다. 딸이 생겨서 그런지 왠지 엄마랑 잘 지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예전보다 자주 친정에 다녔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엄마 옆에서 밥 한 끼 얻어먹고, 엄마는 어떻게 시집왔는지,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어땠는지, 나이차이 나는 아버지와는 재밌게 사셨는지... 그동안 관심가져 본 적 없는 것들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소통 속에 엄마의 인생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임신 중이던 열달 동안이 지난 40년이 넘는 기간보다도 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갑작스레 말기암 진단을 받으셨다. 투병한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끝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내가 둘째 딸을 낳은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날이었다. 진즉에 엄마와 살갑게 지내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엄마가 생각날 땐 엄마가 해준 반찬들이 먹고 싶다. 내가 하면 비슷한 맛이 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해서 만든 것이 열무김치 한 통 뿐이었지만 쌉쌀하고 아삭한 열무김치 한 입에 엄마를 추억하고 그리워했다. 나도 어린 딸에게 살뜰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옛날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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