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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Nov 23. 2021

김은 사랑이다.

시골살이 일상

-새댁~~

한참을 문밖에서 부르셨나 보다.

나는 제일 끝방에서 음악을 켜고 컴퓨터 작업 중이어서 할머니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끼고서야 밖으로 나갔다.

옆집 할머니가 서 계셨다.

-옷 따시게 입고 우리 집에 좀 와보소~

예.


할머니 집은 방바닥에 냉기가 돌았다.

안방만 보일러를 켜 두신 모양이다.

따시게 입고 오라는 말씀이 일리가 있다.


할머니가 계신 부엌에 들어서니 믹서기에 새우가 잔뜩 들어 있었다.

-김장을 해야 되는데 믹서기가 안되네.

그래요? 믹서기 새거네요. 뭐가 복잡한 게 좋은 거 사셨네요.

-그래. 장에 갔을 때 00마트에서 샀지.

저도 첨 써보는 건대.

한참을 이리저리 눌러보았다.

물이 없어서 그런지 헛돌기만 하고 잘 갈리지 않았다.


물을 좀 부어 볼까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머쓱했다.

애꿎은 물만 연신 붓던 찰나 세기를 높이니 '위잉~'소리와 함께 하얀 새우 몸통이 아래 걸쭉한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곱고 부드러운 액체가 되었다.

-아이고 됐네.

그러네요. 이거 넣으면 김치도 맛있겠어요.


할머니 혼자 김장하세요?

-아니, 준비만 해두면 주말에 애들이 와서 할 거야.

아 예.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다른 거 도울 일 있음 말씀하세요.

-없어. 이거 가져가.


할머니는 식탁 위에 16개들이 김 한 봉지를 꺼내 놓으셨다.

아유~  괜찮아요.

-갖고 가서 애들 주소.

고맙습니다~

못 이기는 척 즐겁게 김을 들고 나온다.


아들 녀석이 김을 무지 잘 먹는 통에 사놓기가 무섭게 없어지는 반찬이다.

할머니 덕분에 며칠은 든든하겠다.

-옆에 젊은 사람이 있어서 좋다. 이래 필요할 때 와주니 고맙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로 배웅을 하셨다.


김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옆집을 나섰다.

무언가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김은 사랑이다. 아무것도 아닌데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 무엇.


나의 노년도 저렇게 적적할까.

엉뚱하게 미래를 그려본다.


그나저나 날씨가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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