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버리를 읽다 쓰다
어떤 책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SF라고 답하면 대놓고 어이없음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SF는 허황된 이야기, 질 낮은 글인 거다.
그 정도쯤 아무 타격도 없다.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니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SF를 읽었겠나. 천대 받는 장르의 구하기 힘든 책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던 난데. 그 속에서 찾아낸 보물은 또 얼마나 많았고. 아직 그런 책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오해라 생각한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와 코니 윌리스를 읽어 보라고 얘기해 준다. 레이 브래드버리도 빼놓지 않는다. 단편 몇 개만 읽어도 그들의 빼어난 글에 반할 거라 확신한다. 물론 진짜로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장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살지 모르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좋은 글이란? 고전과 시도 좋아하지만 방바닥을 굴러다니며 읽는 책은 SF와 탐정 소설이다. 책을 덮는 게 아쉽고, 한번쯤 이런 글을 써 보고 싶기도 하다. 다음 장이 궁금해 미치겠는,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게다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이야기만 흥미진진하게 잘하는 게 아니다. 제목만 봐도 느낌이 오지 않는가. <온 여름을 이 하루에>라니. 올더스 헉슬리는 이 사람을 시인이라 했다. 그가 옳다. 세 장 정도밖에 안 되는 단편 <고독한 산책자>를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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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특별한 저녁에는 어딘가 숨겨진 바다를 향해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대기 중에 수정 같은 서리가 잔뜩 내리고 있어서 코가 벨 듯 시렸고 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통째로 들어간 것처럼 화끈거렸다. 가슴속에서 차가운 꼬마전구가 켜졌다 꺼졌다 하고 가지마다 보이지 않는 눈이 잔뜩 쌓여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부드러운 신발 밑창이 가을 낙엽을 밟는 희미한 소리에 흡족하게 귀를 기울였고, 이 사이로 차갑고도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며 간간이 나뭇잎을 주워들어 어쩌다 하나씩 서 있는 가로등 불빛에 나뭇잎의 해골 무늬를 비춰 보고 썩어가는 냄새를 맡아 보았다.
-고독한 산책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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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버리는 2012년에 죽었다. 평생 우주여행을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아니러니는 우주를 꿈꾸고 그리면서도 비행기도 잘 타지 않고 기차여행만 했다는 거다. 그는 기차에서 그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기차는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넜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