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희 <그대는 충분히 고뇌하고 방황했는가>를 읽다 쓰다
요즘 책을 별로 못 읽는다. 이럴 땐 걸핏하면 조급과 화가 치민다. 눈앞에 쌓인, 읽고 싶어 죽겠는 책을 두고 읽어야 할 다른 책의 활자를 쑤셔넣는 기분은 위험하다. 오래전 마셨던 이과두주 같다. 비싼 빼갈을 애써 외면하며 싸구려 독주를 털어넣었을 때, 식도에서 불붙어 오장육부를 화끈거리게 하던 허름한 분노.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이 문장을 ‘핑계’라는 단어의 예로서 사전에 실어도 될 거라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 얻다 하소연할 데도 없다. 내 위장에 붙은 불은 내가 끌 수밖에. 일단 뭐라도 펴들어야 한다. 활자를 들이부어 급한 화기부터 가라앉혀야 한다.
몇 달째 머리맡에 놓여있는 책이 있다. 상비용 소화기인 셈이다. 이덕희의 <그대는 충분히 고뇌하고 방황했는가>를 아무데나 펴서 읽는다. 어제도 그랬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며 맥주 한 잔을 더 따랐다. 위장도 졸음도 포화상태였으나 이대로 잠들긴 억울해 스탠드를 켜고 책을 폈다.
눈 비비며 < >를 읽다 보니 L이 생각났다. 이 글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에 만나면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해 두었다. < >를 읽으니 Y도 생각났다. 당분간은 만날 계획이 없는 사이다. 어쩌지 이메일을 보낼까, 하며 또 포스트잇을 붙였다. 다음 글에서 이번엔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이 생각났다. 다른 이에게 물어볼까 아님 그냥 넘어갈까, 행간에 멈춰있다 보니 기억났다. 나는 책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좋은 책을 찾으면 읽어보라 선물을 하고, 짧은 글이면 옮겨쓰거나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동네방네 소문내며 내가 쓴 글이라도 되는 양 으쓱했다. 독서모임에 대한 해묵은 갈증은 결국, 친구 수가 적어지면서 책 편지를 보낼 대상도 줄어든 탓인 거다. 좋은 책과 글을 나누고픈 목마름.
읽기에 마냥 좋기만 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이제 옛사람이니, 일단 말투가 너무 예스럽다. 내용도 요즘 분위기엔 좀 꼰대스럽다. 하나 싫은 건 더 아니다.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아 시험삼아 찔러볼래도 바늘끝만 한 틈도 안 보이는 반면, 무릎 펴고 걷는 양 어설픈 모습도 의외로 있다. 이런 면이 인간적이다. 고집스럽고 꼿꼿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어느 결엔가 측은하다. 똑똑하고 세련되며, 깐깐하고 성마르지만 매력적인 유학파 고모 같다. 잔소리는 지겹지만 어느새 익은 귀에는 정겹고 그립다.
교양미와 골계미가 소맥처럼 회오리쳐 입에 착 감기는 언어를 구사하는 몇 사람이 생각났다. 그들에게 보내고 싶은 글을 몇 편 추려두었는데 보낼지는 모르겠다. 콧방귀나 뀌면 다행인데 소맥에 페퍼민트까지 탈까 봐.(나는 모히또는 별로다.) 받는 사람이 불쾌하면 편지가 범칙금 고지서보다 나을 것도 없으니 망설일 수밖에. 용기가 좀 더 솟을 때까지 기다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