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읽다 쓰다
내 날개는 날 준비가 되어 있고
나는 기꺼이 돌아가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평생 머문다 해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기에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의 시 <천사의 인사>에서.-
게르숌 솔렘은 발터 벤야민의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의 지적 동반자였다. <천사의 인사>는 그가 벤야민의 29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써 보낸 시로, 숄렘은 벤야민이 수집해서 한동안 소유하고 있던 파울 클레의 펜화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를 잠시 맡아 가지고 있었다.
발터 벤야민.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라 얘기되는 사람. 비평의 비읍 피읖을 포함한 어떤 책에서든 한 번 이상 나오는 이름이다. 궁금하긴 했으나 무서워서 읽을 수가 없었다. ‘독일비평가’는 독서의 의지를 꺾는 단어 중에서도 메달권이다. 무지몽매한 눈에 독일어 번역 문장은 코미디라도 힘들었다. 괜찮아, 내가 문학도도 아니고, 이론서 같은 건 전공자들이 캐게 냅둬, 그들의 영역을 존중하자고... 변명을 위해서라면 달변가가 되었다.
지식인. 책 한 줄 안 읽고 그린 벤야민의 초상은, 또다른 그림인 ‘지식인’ 초상과 일치했다. 벤야민? 알지, 최고의 지식인이었잖아! 젊어서 더 용감무식했던 나. 돌아가는 길에 컨닝용으로 몇 권인가 책을 사기도 했었다.
어쩌다 읽게 되었더라.. 짧은 글이라 용기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미술관에 다녀온 후 파울 클레의 이름이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내게 ‘이 단어(문장)를 어디서 봤더라?’는 신체결박 주문이다. 찾아낼 때까지 책장 앞에서 몇 시간 아니, 며칠이라도 살게 하는.
여기, <역사철학테제>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9번째 장에, 발터 벤야민이 <새로운 천사>를 통해 쓴 글이 있다.
파울 클레(Paul Klee)가 그린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이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아름다운 글에 혼이 쏙 빠졌다. 말은 안 나오고 눈물이 줄줄 났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역사에 대하여, 진보에 대하여, 현대와 현재에 유물론적 역사가와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하여 사유하는 글이다. 사유의 역할을 대행하는 지식인으로서, 폭풍이 몰려오는 도시의 시민들이 어디를 보고 어디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할지 말해주려는 시도다. 한데 그런 건 하나도 안 보이고 천사의 후광만 황황했다. 하릴없이 저 끝에 뭐가 있나, 시선을 따라가 보기도 했지만 헛일이었다.
‘나무의 비유’로 예술을 말한 파울 클레의 아름다운 글을 봤을 때도 나는 혼이 이탈했었다. 천재들이란 사람의 혼을 부리는 주문을 글에 뿌려두는 모양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역사론에 왠 판타지 캐릭터(천사)인가 하던 것이 곧 납득으로 바뀌었다. 예술도 언어도, 모든 건 결국 은유가 아니던가.
벤야민은 지식인이기 전에 인간이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분류해, 셀 수도 없는 유대인, 장애인, 집시, 정신질환자, 동성애자들을 학살한 나찌의 실체를 그는 일찍 알아’보았’고, 이를 알리려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물며 ‘유대인들에게는 미래를 연구하는 일이 금지되었었’는데. 날개 없는 인간이 천사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지상의 사람들에게 선지자 역을 자처할 수 있었을까. 그는 천사의 감각을 타고났던 것 같다. 인간에 대한 끔찍한 연민.
천사의 시선을 공유하면서 그는 기꺼이 함께 폭풍에 떠밀렸다. 한 곳만을 응시하느라 꼼짝달싹 못하는 날개 뒤의 미래를 ‘보지’는 못했다. 조여오는 나치의 포위를 ‘폭파하지’ 못한 벤야민은 타국(스페인)에서 자결했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그의 마지막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