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 <손바닥선인장>을 보다 쓰다
표지에 내가 비친다. 투명한 유리는 모든 빛을 통과시켜버리기에 무엇도 비출 수 없다. 거울이 되려면 검게 칠해야 한다. 시는 검은 물이다. 어둡고 차갑고 무섭다. 눈물과 속성이 같다. 몸에 있어도 아프고 흘려내도 아프다. 그래서 나를 비출 수 있다. 통증이 나를 비춘다.
누구냐 묻기에 선생님이라고 했다. 호칭이 아니라 진짜 나의 선생님이라고.
별 게 다 부러운 나는 갖지 못한 온갖 것들이 탐이 나지만, 괜찮다. 그게 물건이라면.
사람에 대해서는 그게 안된다. 빈 마음이 미어진다. 어릴 땐 오빠가 갖고 싶더니, 조금 커선 남들 다 있다는 소울메이트가 갖고 싶었고, 친구의 배꼽친구들이 부러웠고, 친정엄마도 있으면 했다.(오해하실까 봐..엄마 있다, ‘친정’이 없을 뿐.)
뭘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보니 사부도 사형사제도 없다. 놀기만 놀기만 하다가, 이제 와서 은사가 갖고 싶어졌다. ‘나의 은사’라니, 이리 든든하고 뭉클한 단어가 있을까.
스승님을 찾아 산에 들어갈까도 했지만 방향감각과 저질체력이 염려되었다. 실망하긴 일렀다. 저잣거리 허름한 주막에도 고수는 숨어있는 법이니까. ‘기’를 숨길 수는 없는 법, 스치기만 해도 알아볼 거라 자신만만했다. 만나기만 하면 바짓단이든 치맛단이든 붙들고 놓지 않으리라. 때가 온다면.
때는 고사하고 몸의 때만 늘었다. 뇌에도 마음에도 덕지덕지 낀 때를 째려보며 이걸 어떻게 닦아내지..그리고 언제..이미 버린 몸은 그냥 버릴까..이번 생은 글른 것 같으니..꼬라지도 하다보니 늘어서 날마다 이 꼬라지였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몇 번이던가, 그런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뭐라도 해야 해!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큰소리로 뱉고 나면 무슨 일인가가 생겼다. 그런 날이었다.
글 써야겠어요, 클래스 좀 만들어 주세요.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는데, k님은 내 말을 선생님께 전했고, 적은 인원으로 클래스가 만들어졌다.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당신은 시인이예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왜 모임을 만들려 했냐는 물음에, 글쓰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고 기어이 울음이 터져버렸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묵묵 누르는 것밖에 못하던, 답답하기 그지없던 나. 그런 나를 참아내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타인이었다. 모르게 된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꺼내지도 않은 내 속의 말을 보아준 사람. 늘 시인이 되고 싶었다며, 자신을 시인이라 말하는 사람. 사람 안에 숨어있는 시인에게 인사하는 사람. 나는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없지만, 이분은 분명 나의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