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을 보다 쓰다
선수의 책. 탁 떠오른 말이다. 첨엔 어라? 싶었지만 마지막 장에서는 확신이었다. 소심이라고? 천만에.
친구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오래지 않다. 이 사람에 대해 잘 모른다. 재작년 쯤인가. 페친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기에 궁금하여 따라가 봤다. 시선 끝에 사진이 있었다. 과연. 왜 그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보는 사람이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체를 보이는, 좋은 사진이었다.
팬이 많은 듯했다. 나야말로 소심해서 맴돌며 곁눈질만 했다. 내가 아는 사진가와 화가들은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함축적이고 짧은 구절이 대부분이다. 어떤 작가는 ‘설명 줄줄 다는 건 가오 떨어진다’고 했다. 가오라는 게 뭔지는 그들처럼 프로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낯가리고 겁 많은 나는 이빠이 넣은 후까시로 겁주지 않는 작품이 좋다. 활자성애자라 사진과 그림만 있으면 섭섭하고 짧은 글이라도 읽는 게 좋다.
그는 글쟁이였다. 조근조근 말하는 수다쟁이였다. 나 소심해, 소심하다니까?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재잘대 사람들이 다가와 귀 기울이게 만드는 고수였다.
나는 디지털 활자를 잘 못 읽는다. 포스팅한 글까지는 눈에 힘을 주며 읽지만 남의 글에 달린 수백의 댓글까지는 무리다. 인기 많은 것도 괴롭다니까. 나라면 손가락질만으로 질릴 거 같다. 이 양반은 대단한 팬관리 스킬을 보여주었다. 댓글에 일일이 덧글을 달았다. 고수 맞다니까. 아님 알바라도 쓰는 걸까?
어느 순간 맘이 좀 켕겼다. 좋아요 최고에요 웃겨요 말고는 반응한 게 없다. 댓글 홍수에 물 한 바가지 더 붓는 게 미안해서 그랬는데, 이제는 슬쩍 말을 걸어보고 싶기도 했다. 뭐라고 했더라. 그런 머뭇이 덕지덕지 묻은 말이었던 거 같다. 너만 소심해? 나도 만만치 않아.
소심한 그가 소심한 전시를 한다고 소심하게 알렸다. 모르는 척 하고 있다가 멋지게 등장해서 감동의 물바다를 만들고 싶었다. 표까지 알아봤는데 결국 못갔다. 괜한 부담 주지 말란 계시인가 싶으면서도 짜증이 털리질 않았다. 다행히 책이 왔다. 왜 이제 왔어!!
후까시 잡지 않고 자기 체로 조근조근 말하는 사진. 듣는 사람이 미안한 마음 들지 않게 가만가만 건네는 글. 각 장의 사진과 글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백 번 고쳐 앉혔을 책.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마음쓴 편집은 선수의 솜씨다. 그가 자유기고가라는 이름으로 출판 관련 일을 오래 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과연.
책을 볼 때는 장소에 대한 생각을 했고,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오늘도 딴 데서 실컷 놀다 해가 져버렸다. 가려던 데 못 갔으니 다음에 쿠폰을 써야겠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라는 거지. 뭐랬어. 선수의 책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