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혹은 통곡

영화 <라 비앙 로즈>를 보다 쓰다

by 시린


우ㄹㄹㄹㄹㄹㄹ릉 쾅쾅 번쩍번쩍.

진동과 소리와 빛에 잠을 설쳤다. 비. 그동안 제주에만 내리지 않아 서운했다는 듯 때려붓고 있다.


밤낮 구분 없이 벼락치는 날은 싫다. 번개보다는 우레가, 싫다기보다 무섭다. 지은 죄가 많냐고 사람들은 농을 하지만 벼락 맞을까 봐 무서운 게 아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게 싫은 거다. 겁은 외려 없는 편인데 잘 놀란다. 놀이동산 귀신의 집이나 공포영화도, 무서운 게 아니라 놀래키는 게 싫어 피한다.


서너 살쯤의 기억. 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반쯤 왔을 때 갑자기, 어떤 전조도 없이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우리 식구와 큰댁네와 고모네, 여남은 명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물속을 헤엄치는 모양새가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눈 뜨기도 힘들었다. 어른들은 한 손으로 옆 사람 손을 잡고 한 손은 앞으로 뻗어 더듬거리며 걸었다. 내 양손은 엄마와 큰어머니 아니면 고모 혹은 이모?(일 리는 없겠지만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어렸고, 너무 무서웠다.)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따라 걷기에 너무 짧은 두 다리는 허공과 물을 번갈아 밟으며 버둥거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다 비를 피할 만한 건물이나 큰나무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곧 벼락이 치기 시작했으니까.


태어나 처음 겪는 천재지변(?)에 놀란 나는 소리도 못 내고 울며 끌려 갔다. 도착해서야 통곡하는 얼굴을 발견한 어른들은 얘 좀 봐, 얘 좀 봐, 귀엽다며 웃었다. 겨우 십 분쯤이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루 종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피난갔던 경험이라며 오랫동안 굳게 믿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명절 등에 부엌일을 도우러 오는 소녀가 있었다. 이모뻘이었지만 그나마 언니라고 부를 만한 유일한 사람이라 그 옆에만 붙어 있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어 아궁이불에 옷을 말리라고 앉혀 놓은 멍석에서 늘키고 있는데, 언니가 나를 흘끔 보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깡촌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처음 들어보는 외국 노래였다. 어른들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잃어버린 30년>류의 노래 아니면 고무줄 노래밖에 모르던 때였다. 놀랄 일이 많은 날이었다. 입을 벌리고 보는 어린 청자의 존재에 신이 났던지 언니는 그날 오후 내내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부른 게 나나 무스쿠리와 에디트 피아프라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


<인셉션>을 본 사람들은 폭우와 강물과 꿈속의 물결, 그 위로 흐르던 <Non, je ne regretted rien>를 기억할 것이다. 그 장면에서 나는 그야말로 소름이 제대로 돋았었다. 폭우에 푹 젖어 깡촌 부엌에서 들었던 노래들. 그 옛날 그 노래 그 시간이 현재에 포개졌다. 태어나 처음 본 폭우와 벼락, 뜻도 모른 채 부르고 듣던 이국의 노래.


오래 전에 받아 두었던 <라 비앙 로즈>를 이제야 봤다.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마리옹 꼬뛰아르의 연기는 노래가 립싱크라는 걸 잊을 정도다. 예쁜 배우 마리옹은 어디로 가고, 끊임없이 버려지고 떨어지는 불행의 삶에서 목소리밖에 남은 게 없는 어린아이(<라 몸므>) 에디트가 노래한다. 단 하나 가진, 전부였던, 그의 목소리는 슬프다. <장미빛 인생(라 비앙 로즈)>이라 부르지만 핏빛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핏빛 목소리로 ‘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d rien>)라고 한다. 노래가 아니라 차라리 통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