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의 <나의 나무 아래서>를 읽다 쓰다
소설가의 아들은 음악가이다. 유명감독의 여동생이기도 한 그의 아내는 책의 삽화를 그렸다. 공식적인 행사가 있으면 세 식구가 함께 참석한다.
세간의 주목과 부러움을 받을 만한 장면 아닌가. 외부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아들의 지적 능력이 어린아이 수준이라 돌봐줄 가족이 필요하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으니까. 이들이 얼마 전, 친구이자 오빠이자 외삼촌을 잃었다는 사정도.
남의 사정을 알 리 없고 시샘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나쁜 소문을 만들고 퍼뜨린다. 제목과 그림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 책 속에는 그 내용도 있다. 오에 겐자부로가 세간의 동정과 자기의 명성을 얻기 위해 장애 아들을 이용한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거다. 그는 1994년 노벨상을 받았고 <개인적인 체험(1964)>은 자전적 소설이다. 상 = 장애 아들 의 도식이라는 건데,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알 수 있듯 엉터리없는 소문이지만 당사자에게는 꽤 괴로웠을 텐데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다.
<개인적인 체험>은 내가 처음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책이기도 하다.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는 듯한 캄캄한 문장. 화자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둠을 바라보며 침묵한다. 이 사람은 누군가 전등을 갖고 와 자기를 찾아주기를, 빛을 비춰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실제로 그의 소설 곳곳에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화자 대부분은 자전적 성향이 강하며, 아들 이름은 빛(히카리)이다.
겐자부로는 아들 이야기를 곧잘 하는데, 그 때 그의 어조를 좋아한다. 상대가 학생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아들 이야기를 할 때면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투가 된다. 평소에는 불친절하다거나 무뚝뚝하다는 건 아니다. 콕 집어서 어떻다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다만 진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들과 대화할 때를 재현하고 있다고 할까. 상대와 눈을 맞추고 그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말을 골라 하는 느낌이 드는 거다.
이 책 <나의 나무 아래서>는 청소년 대상의 글이라 그 느낌이 한층 강하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노선생님의 이야기 같다. 몇 번인가 이런 (대상의) 글은 처음이라 어렵다, 실수가 많다, 미야자와 겐지의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고 말하는데 그런 겸손도 좋다.
무언가를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어렵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러니 자기와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고, 공부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게 그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어른이란 자기가 아는 걸 아이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는 스스로 어른이 된다.
오에 겐자부로의 고향에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어린이었던 소설가는 <나의 나무 아래서> 노년의 나를 만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제는 노년이 되어 어린 나와 나눌 이야기를 준비한다. 조금씩 나무에 가까워지고 있을 그가,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