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밤의 몰입

<뒤렌마트 희곡선>을 읽다 쓰다

by 시린

9월 5일 20시 41분 태풍의 가운데서 정전이 되던 순간, <프랑켄슈타인>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랜턴을 켜고 책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다른 책으로 바꿔야 겠군, 화장대에 쌓인 책의 세네카를 훑었다. 읽고 있는 책과 읽으려 하는 책들 중 뭐가 좋을까.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건 좀.. <히로시마 노트>? 아니 이것도 그닥.. <야만인을 기다리며>,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 <우울과 몽상>,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아아 음흉한 인간 같으니라고. 뭔가 발랄한 제목은 없는 거냐? 흠. 이게 좋겠다. 그렇게 뒤렌마트 희곡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극작가를 좋아한다. 희곡을 쓰는 사람들은 천재들이라는 생각이다. 멀티사고가 도대체 힘든 나같은 사람은 등장인물과 무대와 소리, 그 모든 시공을 창조하고 지휘하는 사람이 너무나 존경스럽다. 같은 이유로 교향곡 작곡가도.


그렇다고 존경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읽지는 않는다. 니체를 존경한다고 모두가 그의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읽은 척하는 사람이 반, 시도했다 포기하는 사람이 반은 넘을 거다. 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 자기는 꿈도 못 꿀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존경하는 법이다. 뒤집어 말하면, 존경하는 사람의 책은 읽기에 꽤나 어렵다.


그러니까 내가 희곡을 읽는 건 결국 재미있으니까다. 극작가들의 천성은 이야기꾼이다. 뒤렌마트가 이야기를 소환하면 무대는 순식간에 현실이 되고 관객은 자기를 연기하는 배우를 발견하고 놀란다. 저 사람이 내 생각을 어떻게 읽었을까. 관객과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으로는 뒤렌마트를 따를 자가 없다.


<노부인의 방문>

세상에서 제일 돈이 많은 노부인이 소도시를 방문한다. 노부인은 끔찍하게 가난한 도시에 막대한 기부금을 약속하고, 대가로 자기를 배신한 옛 연인의 죽음을 요구한다.


<물리학자들>

세 명의 물리학자들이 있다.

헤르버트 게오르크 보이틀러와 에른스트 하인리히 에르네스티와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헤르버트 게오르크 보이틀러는 아이작 뉴턴이라고 자처한다.

에른스트 하인리히 에르네스티는 자기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고 한다.

뫼비우스는 솔로몬 왕이 자기에게 나타나 우주의 비밀을 계시한다고 한다.

자기가 뉴턴이라고 하는 헤르버트는 에른스트가 아인슈타인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실은 아인슈타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에른스트 모르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자기가 뉴턴이라고 하지만 실은 아인슈타인이라고 말하는 헤르버트는 실제로는 자기가 진짜 뉴턴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이 두 희곡의 도입부다.

써놓으니 확실하지 않은가. 몰입하기엔 최고다.


아. 가끔 장르가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구분짓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탐정•추리물이, 블랙 코미디 정도로 얘기해 준다. 뒤렌마트는 코미디에도 탁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