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로 글쓰기
동화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과연 쓸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이미 동심이 없는 거 아닐까, 겁을 집어먹곤 시작도 못 해보고 애써 마음을 돌린다. 동화를 쓰고 싶은 마음으로 가끔 시를 쓴다. 어릴 때를 떠올리며 글을 써보기도 한다.
랩탑 파우치에 필요 없어진 명찰(이름만 있는)을 달아두었다. 장족의 발전이랄지. 지금이야 명찰을 달 일이 별로 없지만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름 갖고 놀림 받는 게 싫었으니까. 나 말고도 이름으로 놀림 받는 친구들은 잔뜩 있었다. 자기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했다. 꼭 내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름에 얽힌 이야기 한두 개쯤, 누구나 갖고 있다. 여름밤에 모기불 피우고 둘러앉듯 앉아서, 하나씩 꺼내보면 어떨까.
1.
내 동생 이름은 진입니다
애기가 또 운다. 하루종일 잠자다가 깨면 빽빽 울기만 하는데 엄마는 애기가 너무 착하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맨날 잠자고, 똥싸고, 울기만 하는데. 눈도 잘 안 뜨고 하루에 한두 번 웃을까 말까 한다. 웃을 땐 좀 귀여운데 기저귀 갈아주려고 하면 또 막 운다. 시끄러워 죽겠다. 배고파서 우나? 하고 우유 주니까 좀전엔 잘만 먹었으면서 엄마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또 운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엄마가 애기 울리지 말고 잘 좀 보라고 한다. 언니가, 이때까지 잘 보고 있었다고 소리를 빽 지르니까 알았다, 알았어 그런다. 내가 이제 우유 타주나 봐라. 이제 애기 절대 안 봐! 엄마는 우리보고만 뭐라 그러고. 애기가 이불에 오줌 싼 건 암말도 안하면서! 우리 얘기 듣고 있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쉿, 애기 잔다.
애기 재우고 나서 엄마가 애기 이름 뭘로 할까? 하고 물었다. 유리랑, 진주랑, 보라랑, 연지랑 또.. 공주같이 예쁜 이름들을 끙끙대며 생각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진이가 어떠냐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건 안 예쁜 이름이라고 엄마한테 열심히 알려줬다. 언니는 얼굴까지 빨개졌다. 엄마는 입에 손가락을 대고 쉿, 쉿 하며 애기 깨니까 좀 작게 얘기하라고 한다. 하지만 동생의 인생이 걸려있는데 양보할 수는 없다. 포대기로 애기 귀를 막는 데만 정신이 팔린 엄마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설득을 했다. 엄마, 훨씬 더 예쁜 이름이 많다니까. 우리 얘기 듣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나 보다. 아빠가 나 왔어, 하고 들어오니까 애기 이름은 진이로 정했다고 한다.
자기 맘대로 할 거면 도대체 왜 물어본 거야? 정말 너무해!
나는 찐(진) 언니가 되고 말았다. 우리 엄마처럼 딸들한테 아무 이름이나 막 붙여도 괜찮은 걸까? 세상 사람들은 애기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나중에 크면 사람들한테 물어봐야겠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은 안 할 거야. 나중에 딸을 낳으면 공주님 같은 이름을 붙여줄 거야. 아~~정말 화난다!
2.
복희네 말복이
동네에 말복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첨엔 개똥이, 못난이 같은 아명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진짜 이름이라고 했다.
말복이는 같은 초등학교 다니는 복희의 여동생이었다. 학년이 바뀌면 담임 선생님이 가족관계를 조사하는 설문지를 나눠줬는데 그때 알게 된 복희의 형제는 모두 일곱이었다. 복희는 언니가 넷에 여동생과 남동생이 하나씩 있었다.
복례, 복자, 복순이, 복남이. 복희네 딸들 이름엔 다 복이 들어가 있었다. 돌림자 같은 게 아니다. 막내 남동생 이름은 대성이였으까. 아이들이 복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것도 아니란다. 엄마아빠도 헷갈려서 그냥 첫찌야, 오찌야, 하고 부른다는 이름에 담긴 염원은 아들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단다.
아기가 딸인 걸 확인할 때마다 서운함과 노여움을 누르며 다음에 올 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아빠는 여섯째 복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화를 터뜨렸다고 한다. 이제 복은 빌 만큼 빌었잖아!!!! 그래서 복희네 여동생은 말복이가 되었다.
나도 학생 때는 명찰을 달고 다녀야 하는 게 죽도록 싫었더랬다. 남자 이름이니, 아들 바라는 이름이니 하는 말을 평생 들어야 하는 입장을 생각해 보라. 웃을 일이 아니다. 극복해야 할 가벼운 콤플렉스 쯤으로 치부하는 것도 넌덜머리가 난다. 나는 보지도 못한 복희네 집 어른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내 증조모는 이름이 ‘고마’였다. 어릴 때는 그냥 좀 특이한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얼마 전에야 알았다.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꼬마’라고만 부르던 아이였단다. 죽지 않고 학교 갈 나이가 되어 출생신고를 하러 가니 당연히 이름을 물었단다. “없는데.”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있을 거 아닙니까.” “꼬마요.” 그때는 이름을 반드시 한자로 등록해야 했고, ‘꼬’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어서 ‘고마’가 되었단다.
남의 이름을 두고 성차별에 관해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별에 대한 노여움이다. 바라던 아이가 아니라고 이름도 지어주지 않는다? 평생 갖고 살아야 할 이름을 지으면서 최소한의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가 가장 많이 듣는 게 이름일 테고, 엄마 아빠 다음으로 가장 먼저 익숙해지는 말이 이름일 텐데. 인생에서 자존감이 최초로 형성될 무렵에 듣는 이름에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어떨지 상상을 좀 해보란 말이다. 그런 생각 따위 하지 않았으니 그런 이름을 지었겠지만. 아아 화난다. 또 흥분하고 말았어.
말복이니 뭐니. 나는 절기를 챙기며 사는 사람이 아닌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복희네 여동생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까 이름이 이렇게 중요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