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빨다가 글을 써봤다
인형을 빤다. 손을 많이 대지는 않지만 흰색이라 좀 꾀죄죄해 보인다. 중성세제를 푼 미지근한 물에 잠시 담가 놓는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인형을 처음 본 사람들은 다 묻는다. 뭐에요? 놈삐(무의 제주말)예요. 그건 알겠는데..무 인형이 왜 여기 있어요? 나는 웃는다. 제 조수에요.
조수를 안고 차에서 내리니 p가 묻는다.
“그걸 왜?”
“빨려고”
“왜 빨아?”
“때 탄 거 같아서”
“아니 그러니까...인형을?”
“인형이 뭐?”
“...?”
“...?”
p는 이상했던 걸까. 살에 닿는 옷이나 이불도 아닌 물건을 빤다는 게? 아니면 인형이라는 물건에 들이는 수고가 이상했을까? “인형을 왜...?” 했을 때, ...에는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들어있지 않았나 싶다. 인형을 왜 빨지? 그 전에, 인형을 왜 갖고 다니지? 그러니까, 인형이 왜 있는 거야? 그런 물음.
인형을 빤다. 빨면서 놈삐 인형을 준 사람을 생각하고, 예전에 집에 있던 고릴라 인형, 곰 인형을 생각하고, 어릴 때 갖고 싶었던 사슴 인형, 산타클로스 인형을 생각하고, 테디 베어, 헬로 키티, 양배추, 바니, 수크레,... 인형의 이름들을 생각한다. 이름 없는 인형들을 생각한다. 예쁘고 귀여운 인형과 망가지고 지저분해진 인형, 쓸모없고 쓸모없어진 인형을 생각한다. 쓸모라..인형의 쓸모가 뭐지? 글 한 편 쓴다.
인형의 쓸모
놈삐 씨는 내 조수다. 십 년 넘게 내 차 조수석을 차지하고 있다.
(중고)차를 샀을 때 선물이라며 친구가 줬다. 그러니까 내 차와 놈삐 씨는 나와 함께한 시간이 같다. 십일 년이 조금 넘었다.
엊그제 아주 오랜만에 세차를 했다. 놈삐 씨도 거의 이 년 만에 목욕을 했다. 그러면서 붕붕이와 놈삐 씨와 얼마나 더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잘 하면 오 년? 어쩌면 일 년? 붕붕이의 나이를 생각하면 몇 년 되지 않을 건 분명하다. 길게 생각하면 어째 울적해질 거 같아 얼른 딴 생각을 한다. 놈삐 씨와는 조금 더 함께 할 수 있겠지. 인형뽑기 상자 속의 놈삐 씨와 처음 눈이 마주쳤었지. 며칠 뒤 다시 만났을 때 어찌나 기뻤던지.
그나저나 왜 놈삐 씨를 데리고 다니냐고? 차와 인형의 조합이 생뚱맞긴 하지. 그런데 말이다. 나는 혼자 운전할 때가 대부분이고 놈삐 씨에게 말을 많이 건다. 중얼중얼 어쩌구저쩌구 궁시렁만시렁…
눈치 채셨는지? 사거나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나에겐 인형이 몇 있고, 모두 이름이 있다. 가끔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건다. 혼잣말? 글쎄. 나는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자주 말을 거는데 그것도 혼잣말에 들어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인형이란 게 왜 만들어졌을까? 어쩌면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해서 아니었을까? 톰 행크스의 윌슨 씨를 떠올려 보자구. 감자나 찹쌀떡, 돌이나 배구공도 눈 코 입만 그려주면 인형이 된다. 이름을 붙여주자. 그는 당신에게로 와서 친구가 된다.
말이 너무 많아도 피곤하지만, 인간은 꼭 해야만 하는 말의 최소수치가 있는 게 아닐까. 운전할 때 유독 입이 험해지고 (과격한)말이 많아지는 당신이라면, 인형 조수를 하나 들여보시라고 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