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추상적 단어를 옷걸이라는 사물에 담아 글을 써봤다
모든 글에는 메시지가 있다. 흔히 좋은 글이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글을 가리킨다. 메시지가 반드시 거시적인 명제여야 하는 건 아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로 마음을 울리고 정신을 두드리는 글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우리는 종종 유혹에 시달린다. 소소한 소회를 풀어놓는 데서 좀 더 나아가고 싶은, 뭔가 더 얘기하고 싶은 유혹이다. 단어는 점점 추상적인 것으로 바뀌고 문장도 장황해진다.
글마다 용도에 따라 쓰는 순서가 다르다. 만약 책에 대한 평을 쓴다면 당연히 책을 보는 게 우선이겠고, 글의 주제를 정하는 게 그 다음이다. 이때 가장 무난하고 수월한 방법은 책의 주제를 따라가는 거다. 책에서 건져올린 메시지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써내려가다 보면, 시작점은 비슷했으나 내게 와서 펼쳐지고 다듬어진 새로운 메시지의 글이 만들어진다.
정해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이때 다소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럴 땐 서평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포인트는 예문을 골라내는 데 있다. <흥부놀부>의 메시지가 권선징악이라고들 하지만, '친절을 베풀면 복을 받고 욕심이 과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문장은 없다. 우리가 찾아내는 예문은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놀부가 성한 다리를 부러뜨리는 장면이다. 이 예문에서 우리는 '친절' '욕심' 등의 단어들을 뽑아낸 거다.
뒤집어 말하면, 메시지를 꼭 직접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적절한 예문으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뿐더러, 추상적 단어보다 구체적 단어가 훨씬 이해하기 쉽다. 추상적 단어가 많을수록 글은 읽기 힘들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배려'는 듣기 좋은 말이지만, 명령어가 되면 대번에 싫어진다. '배려하며 살라'느니,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라느니, 목적어를 생략하고 주어도 감춘 채 하는 말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잔소리일 뿐이다. 백번 옳은 말이래도 듣기 싫고 성가시다. 추상적인 단어만으로는 메시지가 잔소리가 되기 쉽다.
그러니 '배려'를 대신할 구체적 사물을 하나 정하자. 배려 하면 떠오르는 사물, 기억나는 일들 중에 하나를 고른다. 책에서 예문을 골라내듯, 머리 속에서 사물을 하나 고르는 거다. 나는 '옷걸이'를 골랐다.
꽃무늬 옷걸이의 배려
걸려 있는 옷걸이를 하..! 한참 바라봤다.
문에 가방걸이쯤 박아두기야 하지, 그도 몇 칸쯤 되는 공공 화장실에나 있지, 없어도 그만인 카페 아닌가.
웃옷이나 머플러가 치렁하면 손을 씻재도 거치적거린다. 벗어서 걸어두고 편히 씻으라는 마음씀이 곱다.
못 하나만으로 감동인데 관상용이 아닐까 싶을만큼 예쁜 옷걸이까지 걸어두었다. 배려를 건네면서도 어떻게 하면 상대가 그 배려를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을까까지 생각한 게 보인다.
말을 건넬 때,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죄송이나 미안은 실례와는 좀 다르다. ‘실례’라고 할 때는 ‘실례를 무릅쓰고’의 생략이 되어, 그럼에도 꼭 해야 할 말이라는 당위성에 밑줄이 간다. 죄송과 미안은 상대에게 폐를 끼치는 나를 자책하는 데 강세를 둔다.
둘 다 자기방어의 표현일 것인데, 타인을 귀찮게 하면 안 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어떤 행위를 하려면 양해와 허락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는 이미 “..해도 되요?” 라는 말에 길들어 있다. 낯가림이 심한 이는 이 과정에서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배려란, 상대가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다. 부담갖지 않고 배려를 누릴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는 일이다.
“눈으로만 보세요”에 질려버린 나는 예쁜 물건을 보면 손을 대기가 조심스럽다. 세상엔 차를 담는 용도로는 쓸 수 없는 잔도 많다.
꽃을 좋아하는 카페지기는 화장실 벽걸이에도 작은 화분을 달았다. 행여 나 같은 사람이 벽걸이를 관상용으로 생각할까 봐 보란듯이 옷걸이까지 걸어두었다. 꽃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옷걸이는 옷걸이다. 화장실 벽에 걸려 있어도 꽃 같은 마음은 그대로 꽃이다.
끔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나이에 동화를 읽기 시작한 나는 착한 사람은 반드시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 몸부림친 날들이 있었다. 동화를 믿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는지, 배려는 반드시 돌아오는 거라 믿는다. 꽃에 담아 보냈던 그 마음이, 힘들고 지친 날에 어김없이 돌아와 그이의 마음을 덮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