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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Feb 01. 2024

다정한 책잔치

북토크에 다녀와서 쓰다

나는 도대체 아는 게 없었고, 그리하여 용감했다. 세상 겁 많은 주제에, 아니 그래서 모르는 일에 겁 없이 뛰어드는 용감무식, 그게 나다.


멋모르고 책을 냈고 내친김에랄까, 얼떨떨함이 가시기도 전에 두번째 책까지 만들었다. 자 이제 어쩐다? 책을 팔아보고 싶었고 서점 서가에 꽂아보고 싶었다. 동네마다 있는 책방이 눈과 맘에 밟혔다. 제주에만 60여 개의 동네책방이 있다는 풍문이 들리던 때였다.(지금은 훨씬 더 많을 테고.) 일 년 동안 일주일에 한 군데씩만 가도 다 못 가고 남을 만큼의 숫자. 그렇다면 한번 직접 가보자 싶었다. 보따리장수가 되어 보리라.


책상자를 싣고 닥치는 대로 다녔다. 인사를 하고 입고 문의를 했다. 세상 낯가리는 주제에 제법 애썼다. 그래도 열 군데쯤은 간 것 같으니까. 육분의 일이라니, 기적이래도 과하지 않다. 뻔뻔했던 그때의 내가 미친 듯이 부끄럽고, 그런 인간을 내치지 않고 선뜻 책을 받아 주신 책방지기님들이 그저 고맙고.


뜨악한 반응을 보인 데도 없지 않았다. 완곡한 거절에는 별 타격도 없었다. 딱 한 군데,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던 곳에서 풀이 죽었다. 시답잖은 물건을 반 사기로 파는 잡상인이 된 듯했다. 그날부터 외판원 노릇은 그만두었다.


하나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용감무식했던 걸음 덕에 연을 맺은 장소와 친구가 있다. 그곳에서 전시도 하고 사인회도 하고 코로나 시국이라 못했던 출판기념회도 했다. 엊그제는 글쓰기 강연이라는 명목으로 책수다를 떨고 왔다.


할머니 집을 고쳐 마을책방을 열었다. 육아에 학업에 정신없이 바빠 못 여는 날이 더 많지만, 하루에 한 권도 못 파는 날이 많지만 <몽캐는 책고팡> 지기는 씩씩하다. 누구보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장 작가들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이 고장 작가라 함은, 태어난 사람만 아니라 이곳 제주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다 가리킨다고 말해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자라는 입장이 되어보니 알겠더라. 책방을 내 물건을 팔아줄 업소로 보고 어떻게든 수수료를 벌어보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책방이 만남의 장소가 되어줄 때 한없이 기쁘고 고마울 뿐이다.


’몽캐다‘는 말은 ‘뭉그적거리다’ 쯤으로 해석 가능한 제줏말이다. ’몽‘에 꿈을 뜻하는 한자를 입혀 ’천천히 꿈을 캐는 책창고‘라는 이름 <몽캐는 책고팡>이 되었다. 고팡지기는 책방 주인, 작가, 학자를 꿈꾸며 찬천히 ’허여질만이(할 수 있을 만큼)’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나는 쓰는 사람을 꿈꾸었고 여전히 꾸는 중이다. 한쪽에서 잡상인 취급받고 풀죽어 온 나를, 고팡지기는 ‘보석 같은 작가님’이라며 환대해 준다. 늘 고맙다, 고맙다고 한다.  


더 고마운 건 나다. 쓰는 마음이 또다른 쓰는 마음과 읽는 마음을 만났다. 또똣한 구들만큼이나 또똣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구간에는 뭘 해도 흉이 아니란다. 흉은커녕 잔치에서 신나게 놀고 선물까지 듬뿍 받았다. 너무 길어졌으니 쌓아둔 이야기는 두고두고 조금씩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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