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물을 끓이다 쓰다
언제부터 썼는지 기억 안 날만큼 오래 쓰고 있었다. 지지난 번 왔을 때 손잡이가 떨어져 없는 걸 보고, 위험하니 버리고 새 걸 사시라 했다. 지난 번에 왔을 때 할배 할매는 여전히 행주를 감아쥐고 커피물을 붓고 있었고, 버리시라 했고, 직접 새 걸 사다놓고 싶었으나 비행기 시간이 빠듯해 못하고 갔다. 주전자값을 드려도 소용없길래 온라인 주문을 할까, 택배로 보낼까 생각만 하던 중에 올 일이 생겨 짐을 싸며 집에 있던 차냄비를 챙겼다. 언제 장에 가게 되면 같은 걸 사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쓰던 거지만 몇 번 안 써 깨끗하긴 했다.
냄비를 가방에서 꺼내 씻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었다. 티비로 야구 보던 아빠가 잠시 후 부엌으로 가는 소리가 들렸고,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방으로 가는 소리가 들렸고, 흥분한 중계소리에 이어, 짧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세 번.
저녁 먹으며 (응원팀이) 우승해서 좋았겠다고, 작년 가을부터 몇 번이고 하고 있는 얘기를 또 했다. 오늘도 이겼어, 하더니, 그러고보니 생각 났는지, 냄비 당신이 사왔냐고 엄마한테 물었고, 헌 건 버렸다고 했고, 속으로 마침내!를 외치며, 내가 가져왔다고 했다.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려니 놔둬 내 일이야, 하더니 아빠는 상을 통째로 들고 부엌으로 갔고,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렸고, 커피 마실 거지? 물었고, 어, 하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