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읽다 쓰다
프루스트의 어떤 점이 그리 대단한가, 전엔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아는데, 이런 점이다.
아래 아래 문단을 읽을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래 한 문장만 읽으면 된다.
_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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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그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녀와 식사한 일이나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은 아주 기억이 잘 났다. 하지만 그런 추억이 담겨 있는 내 내면의 지대를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봐도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름은 거기 있었다. 내 생각은 이름의 윤곽을 파악하고, 첫 글자를 찾아내어 마침내 이름 전체를 밝히기 위해 이름과 더불어 어떤 놀이를 시작했다. 덩어리와 무게는 대략 느낄 수 있었지만, 그 형태로 말하자면 내가 아무리 마음의 어두운 내면 속에 웅크린 그 이해할 수 없는 포로와 대조하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말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물론 나의 정신은 가장 어려운 이름도 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정신은 창조가 아닌 재생을 해야 했다. 정신의 모든 활동이 현실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건 무척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현실에 복종해야 했다. 마침내 이름 전체가 단번에 나타났다. “아르파종 부인.”이 나타났다는 건 맞는 말이 아니다. 이름이 그 자체의 추진력으로 나타났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부인에 관련된 수많은 가벼운 추억들, 내가 계속해서 도움을 청했던 그 모든 추억들이(이를테면 “이 부인은 수브레 부인의 친구로 빅토르 위고 얘기가 나오자마자 공포와 혐오가 섞인 너무도 순진한 존경심을 품었어.”와 같은 격려의 말에서 나온 추억이) 나와 그녀의 이름 사이로 날아다니면서 어쨌든 그 이름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이름을 찾아내려고 할 때 우리 기억 속에서 벌어지는 그 커다란 숨바꼭질에는, 일련의 점진적인 근사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짐작한다고 믿었던 이름과는 완전히 다른 정확한 이름이 나타난다. 아니, 우리에게 온 것은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름이 분명히 구별되는 지대로부터 멀어지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내적 시선의 예리함을 키워 주는 의지와 주의력의 단련을 통해 갑자기 희미한 어둠을 뚫고 뚜렷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망각과 기억 사이에 중간 단계가 있다면, 이 단계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진짜 이름을 찾기까지 우리가 통과하는 이런 단계적 이름들은 전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이름에 접근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이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은 우리가 이름을 되찾아도 발견되지 않는, 단순한 자음의 나열에 불과하다. 게다가 무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이런 정신 작용은 매우 신비스러워서 이 가짜 자음도 결국은 우리가 정확한 이름을 포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서툴게 내밀어진 예비 장대인지 모른다. “이 모든 말들은,” 하고 독자는 말할 것이다. “부인이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이 문제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체했으니, 작가 선생, 일 분만 더 시간을 허비해서 당신같이 젊은 사람이(혹은 당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당신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 그토록 잘 아는 여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벌써 기억력이 없는 게 유감이라고 말하게 해 주시오.” 독자 선생, 사실 유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거기서, 이름과 말들이 사유의 밝은 지대로부터 사라져 우리가 가장 잘 알던 사람들의 이름조차 스스로에게 명명하기를 단념해야 하는 시기가 온 조짐을 느낀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슬픈 일이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이런 노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이런 결함이 단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름, 물론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이름, 기억하느라 피로해지고 싶지 않은 이름과 더불어서만 나타난다면, 이런 결함도 이득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게 뭔가요?” 독자 선생, 질병만이 그걸 주목하게 하고 가르쳐 주고,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알지 못할 구조를 분석하게 해 줄 거요. 밤마다 침대에 풀썩 쓰러져서는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까지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남자, 그런 남자가 잠에 관해 커다란 발견이 아니라면 적어도 작은 관찰이라도 해 보려고 생각할 것 같소? 그는 자신이 자는지 마는지도 잘 알지 못하오. 약간의 불면은 잠을 음미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투사하는 데 그리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라오. 결함 없는 기억이란 기억 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강력한 자극제는 되지 못한다오.
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민음사. 7권 2부 101~1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