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연 <조각들>을 읽다 쓰다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온 소설을 진작에 읽었노라는 자랑, 그러니까 팬심에 대한 자랑질이다. 팬심으로 있는 줄도 몰랐던 문학잡지를 사고, 그 자리에서 해당 쪽을 찾아 호로록 읽었다. 짧아서 아쉬웠으나 여운이 길어 아쉽지 않았다.
어릴적, 엄마가 자투리천을 이어 만든 여름이불이 생각난다. 수련회 준비물로 싸 준 그 이불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천조각들을 잇는 바느질 자국이 창피했다. 바느질 자국은 내복, 양말 어디에나 있었는데 그게 창피했다. 삶이 온통 누더기 같았다. 찢어지고 해진 데를 누덕누덕 기워 어떻게든 이어보려는 마음 같은 건 아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말 한 마디로 어떤 것도 보상할 수 없지만, 어쩌면 보상이 될 지도 모르는 ‘고생했네’ 라는 말 한 마디조차, 성인이 되어서도 무뚝뚝한 딸은 건네지 못한다.
좋은 글이란 뭘까. 하많은 좋은 글의 이유 중 내게 가장 좋은 이유는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생각하게 하는 글.소설을 쓰리라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혹시라도 그날이 온다면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조각들>의 잔상을 여전히 더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