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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하늘 샘물

by 권옥순

마르지 않는 하늘 샘물

권옥순

“물 길어 올게요.”

오빠는 물 초롱을 지고 물을 길으러 하늘 샘으로 향한다. 마을에 수도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 우리 집은 부엌의 커다란 물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가 먹기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물을 긷는 것은 주로 오빠들 몫이다.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은 오빠는 내게 오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오빠를 돕겠다고 한 되들 이 주전자를 가지고 쫄랑쫄랑 따라나선다.

우리 집은 초등학교 바로 옆인데 하늘 샘에 가려면 학교 담벼락 아래 근대 밭을 지나 철길을 건너야 한다. 오월의 근대 잎은 초록의 싱그러움을 자랑이라도 하듯 밭고랑 가득 쑥쑥 자라고 있다. 영월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철도 건널목에는 건널목지기가 있다. 그러나, 그 건널목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건널목지기가 없어서 그냥 건너다 가끔 끔찍한 사고가 나기도 하는 위험한 길이다.

빈 주전자를 들고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샌가 오빠는 보이지 않고 건널목지기가 없는 건널목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은 위험하니 잘 살피고 건너야 한다’는 엄마 말씀이 귓가에 맴돌아 이리저리 살핀 후 얼른 건너와 ‘휴’ 하고 한숨을 돌린다. 행여나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 잰걸음으로 가 보지만 오빠는 보이지 않는다. 이젠 포기하고 오솔길을 지나는데 하얀 찔레꽃이 반겨준다.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면서 따먹었다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과 은은한 향기에 취해 콧노래를 부르며 오솔길을 지나니 어느덧 넓은 길이 나왔다. 이쯤 오면 거의 다 왔기에 마음은 벌써 하늘 샘에 가 있다. 저만치 앞에서 두 초롱 가득 물을 길어 어깨에 지고 오는 오빠가 보인다.

‘우와, 무겁겠다.’ 오빠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지만, 오빠는 웃으면서

“꼬마야, 오지 말라니까 왔어. 조금만 떠 가지고 얼른 와.” 오빠는 한마디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응, 조금만 가지고 갈게.” 저렇게 무거운 것도 거뜬히 지고 가는 씩씩한 오빠가 자랑스러워서 내 발걸음도 씩씩해진다.

하늘 샘물은 영월군민들의 식수원이자 빨래터이다. 여름이면 손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가시고, 겨울엔 따뜻해서 계절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배려하는 온도였다.

퍼 올리는 사람이 많아도 줄어들지 않고, 비가 오지 않아도 마르지 않는다. 깊은 땅속에서 쉬지 않고 올라오는 생명력이다.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그리도 맛있을까?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맛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 정화되어 미네랄이 풍부하고 맛 좋은 신기한 물이다.

그뿐인가, 많은 사람들이 광주리 한가득 빨래를 가지고 와서 샘가 빨래터 양쪽에 대여섯 명씩 나눠 앉아 빨래를 한다. 애벌빨래는 아랫자리에서, 헹구는 빨래는 윗자리에서…. ‘펑펑 팡팡’ 빨래 방망이질을 할 때마다 쏙쏙 때가 빠지는 소리에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 빨래터는 온 동네 집안의 사정들이 오가는 소식통이다. 빨래를 하면서도 서로를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고 어려운 것은 함께 걱정해 주며 방법을 찾곤 한다. 하늘에서 솔솔, 땅에서 퐁퐁 솟는 물 좋고 인심 좋은 하늘 샘물이다.

열 살 되던 해, 드디어 마을에 수도가 들어오게 되어 우리 집 마당에도 수도를 놓았다. 아버지는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물도 받고 빨래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항아리에 받아 놓고 쓸 때는 먹는 물, 씻는 물, 허드렛물 등 아껴 써야 했다. 그러나 이제 작은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고 무엇보다 하늘 샘물까지 물 길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 그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이후로는 하늘 샘물에 갈 일도 없고,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잊혔던 하늘 샘물이 생각나서 50년 후 그곳을 찾아갔더니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고향 친구께 물어보니 동강이 범람하지 않도록 제방에 둑을 쌓고 아파트를 짓느라 없앴다고 한다. 이제 물은 버튼 하나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는 일은 드물어졌다. 깊은 곳에서 스스로 올라오던 물의 기억도 함께 묻힌 듯하다. 편리함 속에서 사라진 것은 물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어도, 사람이 떠나도, 땅속 깊은 곳에서 변함없이 솟아나던 물!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되었지만, 땅속에서 스스로 정화되며 올라오던 샘물 하나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전기도 쓰지 않고 스스로를 유지하던 물. 그 샘물은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보여주었다. 샘물이 사라진 것은 단지 물 하나를 잃은 일이 아니다. 자연이 먼저 내어주고, 사람은 조심스럽게 받아 쓰던 관계가 함께 사라진 것이다. 파는 물에 익숙해진 우리는, 솟는 물의 의미를 다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마르지 않던 그 샘물처럼, 자연과 사람의 관계도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솟아올라 오래 흐를 수 있기를 바라며 소싯적 아름다웠던 추억을 아련히 견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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