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언제부턴가 할머니 댁에만 다녀오면 배앓이를 했다.
증상은 집으로 출발하는 길에 갑자기 시작된다.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식은땀이 흐르면서 손발이 차가워진다.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먹고,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리고 나서야 진정된다. 엄마는 오래된 수도관 탓일 거라 추측했지만, 가족 중 나에게만 증상이 나타났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할머니에 대한 나의 복잡한 감정이 배앓이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할머니 댁의 현관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다 우리를 맞아주셨다.
“배고프지, 너네 온다고 해서 떡이랑 과일 좀 사다 놨어.”
“어머니, 저희가 올 때 사 온다고 했잖아요, 또 힘들게 다녀오셨겠네.”
엄마의 대답에 안타까움과 약간의 체념이 묻어 있다.
할머니의 고집이 기어코 두 다리를 일으켜 굽은 다리로 힘겹게 오르막길을 올랐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식당에서 일하며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탓에 할머니의 몸 이곳저곳은 성한 곳이 없다. 관절이란 관절은 젊은 날의 혹사를 견디다 못해 툭 불거져있다. 몇 년 전 무릎 수술을 했지만,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새것처럼 고칠 수는 없다.
엄마는 미리 집에서 만들어 온 갈비찜을 데웠다. 분주한 소리가 나자 할머니가 거실에서 힘겹게 걸어 나오셨다.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를 일으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점심 준비를 돕겠다는 할머니께 억지로 의자를 내밀자, 마지못해 앉으셨지만 불편한 듯 엉덩이를 자꾸 들썩이셨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긴 사람처럼 불안한 눈동자가 자꾸 주방 이곳저곳을 훑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보다도 자식들 고생시키는 걸 싫어하시는 할머니가 못 이기는 척 앉아 있다는 건, 일할 수 없을 만큼 힘겹다는 거겠지.
갈비찜, 잡채, 도라지무침… 여러 찬이 하나둘씩 차려지고, 우리는 상에 다 같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아빠는 갈비찜에서 뼈가 없는 살코기를 하나 골라내 할머니 밥 위에 얹는다. 할머니는 고기보다 나물이 더 좋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몇 번의 젓가락 실랑이 끝에 할머니가 갈비를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고기보다 나물이 더 좋더라. 옛날에, 어렸을 적에는 고기반찬을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안 그래.”
“그래도 드셔야지. 그래야 힘이 나지.”
아빠는 씩씩하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속상함이 언뜻 스쳤다.
할머니 당신은 좀처럼 더 드시려 하지 않으시면서, 자식들에게는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끊임없이 권하셨다. 나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밥 한 그릇을 간신히 비우고도, 할머니의 끈질긴 권유에 결국 숟가락을 몇 번 더 들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간식이라며 따끈한 옥수수를 내미셨다. 이미 배가 터지기 직전이었지만, 옥수수를 정성껏 손질하고 삶았을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듯, 옥수수 한 알 한 알을 입안에서 오래도록 씹었다.
“과일도 먹어볼래?”
“안 먹을래요.”
“얼마나 먹었다고 그래. 배 한쪽만 더 먹어봐.”
“아, 저 진짜 배부르다니까요? 안 먹는다고요.”
몸이 무거워지니 쉽게 짜증이 올라왔다.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퉁명스러워졌다.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방을 나가셨다. 어렴풋이 한숨이 들린 것 같다. 길어야 3박 4일 머물다 오는 할머니 댁에서 좋은 손주 노릇 하는 게 왜 그리 어려운지. 짜증이 불쑥 올라오는 순간은 다스리기 어려웠고, 우리를 배웅하는 할머니의 자그마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 해에 서너 번 만나는 우리의 모습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복잡해지곤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쉴 새 없이 움직이시는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답답함이 밀려와 가슴 한쪽이 꽉 막히는 듯했다. 어떻게든 당신의 몫을 해내려는 할머니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아무리 화를 내며 말려도, 기어코 손에서 일감을 놓지 않으셨다. 당신의 건강보다 자식들을 더 걱정하는 할머니의 굳건한 사랑은, 때로는 마음을 쿡쿡 찌르는 가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년 가을부터 할머니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는 몸은, 식욕을 잃은 뒤부터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밥을 잘 드시지 않으니 기력이 떨어지고, 근육도 눈에 띄게 줄었다. 가족들은 주말마다 돌아가며 할머니를 찾아뵙고 식사를 챙겨드리려 애썼지만, 매 끼니를 챙기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전화로 할머니께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를 물어볼 때마다, 할머니는 늘 ”잘 먹고 있다”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대답과는 달리 할머니의 몸은 점점 더 약해져 갔다. 죽이나 국 종류 같은 부드럽고 삼키기 쉬운 음식 외에는 거의 드시지 못했다.
“할머니,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없어. 이제는 기력도 예전 같지 않고, 먹고 싶은 것도 없어.”
할머니와의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뒤부터,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뭔가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큰 후회가 밀려올 것만 같았다.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거나, 다정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살가운 성격의 아이는 아니었다. 마음은 있어도 표현하는 법에 서툴렀다. 애교를 부리는 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꺼내 보이면 좋을지 몰라 항상 머뭇거렸다. 그러다 보니 진심은 자꾸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이내 삼켜지곤 했다. 때론 단순히 게으름 탓이기도 했다. ‘다음에 하지 뭐’ 하며 미뤄뒀는데, 그다음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숨기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결국 없던 것처럼 사라져 버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빵을 굽기 시작했다. 엄마만큼 요리를 잘하지도, 아빠만큼 찾아뵐 수도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카스테라, 파운드케이크, 머핀처럼 부드럽고 쉽게 녹는 종류의 빵들만 골라 만들었다. 설탕은 최대한 줄였고, 가능한 담백하게 만들었다. 할머니의 입맛이 민감해져 조금만 달아도 속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어. 빵도 만들 줄 알고, 아주 장해. 맛있게 먹었잖아.”
빵이 정말 맛있었을까? 할머니의 예민해진 입맛엔 밀가루 풋내며 달걀 비린내가 입안 가득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를 통해 빵을 보낸 날이면, 할머니는 꼭 전화하셔서 잘 먹었다며 말해주셨다. 빵을 통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게 내가 할머니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까지 음식을 권하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것이 할머니가 내게 줄 수 있었던 전부였던 거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건 사랑에 서툰 우리의 애정 표현이었고, 할머니의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나를 감싸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빵을 굽거나,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게 할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