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이라는 방패가 녹슬어갈 때
새벽 2시, 여의도의 한 고층 빌딩 사무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화려했지만, 모니터에 반사된 내 얼굴은 푸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로펌에서 대기업으로, 그리고 다시 지금의 금융권으로 적을 옮기며 치열하게 달려온 5년. 명함에 새겨진 '변호사'라는 세 글자는 때로는 자부심이었고, 때로는 족쇄였습니다.
선배 변호사들은 "자격증만 있으면 평생 먹고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들의 조언은 틀린 것이 아니라, '유효기간이 지난' 진실이었습니다.
오늘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진짜 힘과, 그 힘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법전 밖의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법에 대한 사적인 기록이자, 후배들에게 전하는 차가운 조언입니다.
솔직해집시다. 변호사 자격증 하나로 '귀족' 대접을 받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로스쿨 도입 이후 시장에는 매년 수천 명의 변호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제 변호사 자격증은 성공을 보장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라, 그저 필드에 입장할 수 있는 '기본 입장권'에 불과합니다.
내가 사내변호사로 처음 이직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미묘한 시선의 변화였습니다. 과거에는 법무팀의 검토가 절대적인 권위였다면, 이제는 비즈니스를 위한 하나의 '참조 사항' 혹은 '리스크 헷징 수단'으로 취급받곤 합니다. 단순히 법리를 해석하고 리스크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조직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기계적인 법률 자문은 머지않아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변호사의 가치는 하락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희소성이 사라진 자리에, '전문성'이라는 진짜 기회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커리어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전문성을 획득하는 속도'에 있습니다.
나는 금융권으로 이직한 지 1년 만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천재여서가 아닙니다. 바로 '법(Law)'이라는 명확한 기초 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산업은 법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구조물입니다. 블록체인이든, 바이오든, 건설이든 그 산업을 규율하는 법적 구조(Legal Framework)를 이해하면, 산업의 본질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현장의 노하우를 몸으로 부딪치며 배울 때, 우리는 규정과 판례를 통해 그 산업의 '설계도'를 먼저 봅니다. 업계 지식이라는 '살'이 변호사라는 '뼈대'에 붙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법률가를 넘어 해당 인더스트리의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로 진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변호사가 가진 압축 성장의 비밀입니다.
또한, 법은 모든 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언어입니다.
개발자는 코드로 말하고, 재무 담당자는 숫자로 말합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규칙'으로 말합니다. 이 규칙은 산업의 경계를 넘어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로펌에서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상대했던 경험, 대기업에서 조직의 생리를 익힌 경험, 금융권에서 자본의 흐름을 본 경험.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의 베이스캠프가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에게는 산업 간 이동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기회입니다. 하지만 많은 변호사가 이 기회를 보지 못한 채, 서초동의 좁은 사무실에 갇혀 있거나 사내 법무팀의 한구석에서 계약서 검토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자격증이 주는 프리미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변호사'라는 명사 앞에 어떤 형용사를 붙일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단순히 "법을 잘 아는 변호사"는 매력 없습니다. "금융 구조를 설계할 줄 아는 변호사", "IT 비즈니스 모델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변호사"가 되어야 합니다. 전문성과 기회의 다양성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만의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설계해야 합니다.
법률 지식을 무기로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뛰어드십시오. 법적 리스크를 지적하는 '브레이크' 역할에 머물지 말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업이 가능하게 만드는 '엔진'이나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변호사 커리어를 100%, 아니 200% 활용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고시촌에서, 누군가는 로스쿨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로펌의 과중한 업무에 치여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출근했을 겁니다.
부디, 그 고단함의 끝이 단순히 '자격증 취득'이나 '연봉 상승'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쥐고 있는 그 자격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유용한 도구입니다. 다만, 그 도구를 쥐고 무엇을 조각할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자격증이라는 방패 뒤에 숨지 마십시오. 방패를 내려놓고 검을 들 때, 비로소 진짜 변호사의 커리어는 시작됩니다.
이 글에 담지 못한 구체적인 현실 전략과 이직 노하우는,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만 조심스럽게 나누고 있습니다. (프로필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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