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윤현
어떻게 해야 서로가 잘 아는거죠
아주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냥 오래전에 봤던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영화 접속의 수록곡을 어디선가 우연히 들은 후부터 기억 멀리에 자리 잡고 있던 이 영화가 자주 떠올라서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손안에 인터넷이 이미 익숙해진 지금 시대에 PC 통신 채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은 묘한 신선함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CRT 모니터 속 파란색 배경에 PC 통신 화면을 보는 순간 저를 어린 시절 어느 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은 오래전 영화가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던 아이여서 초등학교 때 흑백 화면 위로 보이는 텍스트와 CD보다 조금 더 큰 네모난 디스켓을 거쳐 이 영화를 봤던 중학교 시절은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에 가서는 인터넷에 초창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클라우드를 이용해서 맥북으로 글을 쓰고 그걸 아이폰에서 추가 수정 작성한 후 메일로 보내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에서 최종 수정을 하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내가 이 기술의 발전과정을 다 경험했던 세대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현실에서 연애를 힘들어합니다. 수현(전도연)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좋아하고 동현(한석규)는 지난 연인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대를 떠나 로맨스 영화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만큼 현실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파란색 컴퓨터 화면 안에 동현은 ‘해피엔드’ 그리고 수현은 ‘여인 2’라는 대화명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채팅을 통해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그 대화들은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과정에서 둘은 각자 혼자 영화를 보러 간 극장에서 한번 그리고 지하철에서 한번 같은 공간에 있게 되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동현이 멀리 떠나기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수현은 그를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가 음성 메시지로 남긴 일방적인 약속이었지만 약속 당일lp 판을 들고 있는 그녀를 알아보고는 동현은 카페 2층으로 올라가 한참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기다리다 지친 여자는 카페 2층에 공중전화로 동현에 전화로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그걸 듣고 있는 남자 마침내 뛰쳐나가서 둘은 만나고 서로를 보며 웃으면서 ‘주제가’가 나오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갑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오류를 만들고 많은 아픈 감정들도 미화 시킵니다.
제가 오래전에 봤던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들었던 그 노래는 엔딩곡으로 또 영화에서 연주곡으로 몇 번 나올 뿐 원곡으로는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 Sarah Vaughan에 ‘A Lover's Concer’t였지만 사실상 이 영화에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음악적 장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pale blue eyes’라는 노래인 것처럼
그래도 영화 ‘접속’은1997년 서울에 모습 그리고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집 전화와 음성사서함, 삐삐, 공중전화 그리고 멀티플렉스 이전에 극장들
그리고 여전히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들에 청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다시 보기에 충분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