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왕가위
길을 잃고 한동안 해맸지만 이과수 폭포에 도착하니 보영이 생각나서 슬펐다.
폭포 아래서 둘이 있는 장면만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취향과는 가장 멀리 있었던 작품이 ‘해피 투게더’입니다.
여러 사람들에 극찬이야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미뤄왔던 숙제를 마치는 기분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나 시작 장면부터 너무나 강렬한 것이 개인의 취향이란 ‘사람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 음악들은 장면과 함께 어우러져 몇 마디 대사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들을 전달해 줍니다. ‘해피 투게더’ 역시 남미의 이국적인 풍경 위로 쌓아 올려진 음악들은 인물들의 표정이 더해져 때로는 어떤 대사보다 더 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장국영이 연기한 ‘보영’과 양조위가 연기한 ‘아휘’ 두 사람은 낯선 땅 아르헨티나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싸우기부터 시작하는 것 보니 이곳에서의 둘의 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툼은 결국 헤어짐이 되어 각자의 낯선 땅에서 각자가 선택한 자리에서 서로 자주 마주칩니다. 보영은 일을 구했고 아휘는 다른 남자를 구해서 보영 앞에 자주 얼쩡거리며 보영에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온 보영은 아휘에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고 말합니다. 아휘는 다친 보영을 그냥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함께 아휘에 집으로 향합니다.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담배를 피우던 아휘는 손이 다친 보영에게 담배를 물려주고 보영은 그에 어깨에 기대고 음악은 흘러나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양조위에 눈빛이 이보다 더 슬퍼 보였던 영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계’에서 마지막 장면에 왕치아즈를 떠나보냈을 때도 ‘화양연화’에서 문뜩문뜩 보였던 그 고독함과도 다른 사람 마음을 아주 순식간에 공허하게 만드는 그 표정과 그 눈빛에 아휘에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우려했던 것처럼 며칠에 거쳐 끊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호흡에 보기 힘들 거라는 우려는 소재에 대한 부분이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서 자주 저를 주저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화면을 넘어 관객인 저에게까지 전해지는 고독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에 사랑이 그러하듯 늘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그 사실이 이렇게까지 안쓰럽게 저에 감정을 공격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방심한 감정들 틈 사이로 그 슬픔들이 몰려올 때마다 멈춤 버튼을 누르고 다음날로 이야기를 미뤄야 했습니다.
거창한 이유나 원대한 꿈을 품고 와도 다른 나라에서 삶은 이방인에게 녹녹치 않을 것인데 별 준비 없이 두 사람에 행복을 위해 찾아온 이곳에서 둘의 시작은 다툼부터 였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한번 헤어진 연인들은 같은 문제로 다시 헤어지는 경우가 주변에서도 빈번하듯이 그 헤어짐에 과정에서 각자의 마음에 어느 정도에 상처가 남습니다. 그리고 다시 둘이 만났을 때는 어떤 안도감에 취해 그 상처는 이미 다 아물었겠지 하고 안일한 생각들을 하지만 또 비슷한 문제 앞에 서면 이미 마음속 안에 사라졌다 믿었던 상처들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우리는 다시 이별을 반복하게 됩니다.
사람의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고 수치를 계량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사랑하는 순간 누군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덜 좋아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양조위에 눈빛이 이렇게까지 고독하게 보였던 것은 보영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가장 가까운 감정인 미움이 섞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두 손을 다쳐 그에게로 다시 돌아온 보영을 퉁명스럽게 받아주었을 때도 그리고 보영의 손이 낮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레이션에서도 양조위에 고독한 눈빛은 보영은 다시 떠나갈 사람인 것을 알지만 마음에서 그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그 복잡한 감정에 표현으로 느껴졌습니다. 결국 떠나려는 그 순간까지 여권을 감추고 주지 않지만 떠날 사람은 결국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렇게 완전한 이별을 하고 보영과 아휘는 서로의 내일을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립니다.
둘이 함께 가기로 했던 이과수 폭포 앞에 혼자 선 아휘가 느꼈던 슬픔도 결국 늘 보영과 함께 이곳에 도착할 본인의 상상과 다른 지금보다는 이제 더는 둘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다는 확실한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해피 투게더’를 보기 전에는 두 남자가 서로 사랑하는 영화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까지 다 보고 난 후에 이 영화는 저에게 그저 두 사람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 기억 될 것 같습니다.